오프 더 월 Off the Wall이라는 슬로건과 고유의 체커보드 패턴 슬립온으로 유명한 반스는 1970년대 초반 현대 스케이트보딩의 창시자로 불리는 토니 알바, 스테이시 페랄타 등을 위해 스케이트보더를 위한 전용 스니커즈를 개발, 출시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유산을 기반으로 액션 스포츠는 물론 음악과 예술, 스트리트 패션 등의 분야에서 청년 문화를 지지, 대변하며 타 스니커즈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독창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해오고 있다.

오더메이드 시스템으로 규모 넓힌 비즈니스
반스는 철저히 ‘반 도렌 패밀리’의 가업으로 시작했다. 첫 매장의 매니저는 창립자 폴 반 도렌의 아내였으며, 아들 스티브 반 도렌 역시 늘 아버지 곁에서 브랜드의 시작과 성장을 지켜왔다. 이 작은 신발 회사의 이름은 반 도렌 러버 컴퍼니 Van Doren Rubber Company로 공장과 사무실 그리고 매장을 한곳에서 함께 운영했다. 제조자가 판매 전반까지 맡아 수행한 건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일. 고객이 주문을 하면 바로 그때부터 만들기 시작해 빈 상자는 저녁이 되면 손님들이 찾아갈 신발로 가득 채워졌다. 일종의 오더메이드 made-toorder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반 도렌 러버 컴퍼니는 오더메이드 시스템으로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점점 널리 이름을 알렸다. 창업 후 1년이 지났을 때 반스의 매장은 이미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 내에 50개가 넘었다. 하지만 폴 반 도렌은 확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제품의 기능에 대해서 철저한 검증을 반복했음은 물론이다. ‘셔먼 탱크처럼 튼튼한 신발을 만드는 것’은 그의 목표 중 하나였고 20년간 신발 회사에 근무하며 쌓은 경험을 통해 반스라는 브랜드를 궤도에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스케이트보더와의 연대로 만들어낸 반스 신드롬
1960년 후반 베니스 비치 인근 독타운 지역의 소년들은 매일 아침이면 서핑을 하고 오후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탔다. 반스엔 이들의 피가 흐른다. 오더메이드라는 시스템으로 브랜드의 기반을 다졌다면 추종자를 거느릴 수 있게 해준 건 스케이트보더와 펑크 키즈들이었다. 스케이트보더들이 반스의 핵심 고객이 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그들은 산타모니카와 맨해튼 비치 등지에 위치한 반스 매장에서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강렬한 색 조합의 신발을 주문했고 그중엔 모던 스케이트보딩의 창시자이자 레전드로 불리는 토니 알바와 스테이시 페랄타가 있었다. 기존의 어센틱 모델을 발전시킨 ‘에라’ 시리즈는 스케이트보더들의 의견을 반영한 첫 제품이다. 에라는 신발 옆면에 패드를 덧댄 디자인으로 발목을 보호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스케이트보더들이 부상의 위험에서 벗어났고 그들은 반스 신발에 더욱 애착을 가졌다. 게다가 오프 더 월이라는 로고를 처음 새긴 신발이기도 했다. 오프 더 월의 정신은 제품으로 끝나지 않았다. 반스는 창업자의 아들 스티브 반 도렌을 앞세워 선수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직접 밴을 몰고 선수들을 대회장까지 실어다주는가 하면 체계적인 매니징을 맡을 인물까지 영입했다. 스티브 카발레로는 반스가 처음 후원한 스케이터로 그는 반스의 신발을 신고 전 세계를 도는 대가로 300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상업적 성공은 스케이트 신 바깥에서, 예상치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982년 숀 펜 주연의 영화 <리치몬드 연애 소동>에 반스의 체커보드 슬립온이 노출되며 열풍의 기폭제가 된 것. 그 이후 반스는 수백만 켤레의 슬립온을 팔아치웠다.

제조업에서 마케팅으로 전환한 체질 개선
반스의 전성기가 계속됐던 건 아니다. ‘체커보드 시대’ 이후 폴 반 도렌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고 동생 제임스 반 도렌이 이 신드롬을 발판 삼아 사업 전면에 나섰다. 그는 폴 반 도렌과 달리 브랜드의 라인업 확장에 공격적이었다. 토털 스포츠화 브랜드로의 진입 시도는 농구와 러닝, 야구는 물론 축구와 테니스, 레슬링까지 뻗어나갔다. 하지만 그건 반스답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여러 거래처에게 1000만 달러 규모의 빚을 지게 된 반스는 1984년 파산이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창업자 폴 반 도렌이 다시 경영에 복귀했고 6주에 한 번씩 새로운 사업 계획을 세웠다. 3년이 지나서야 반스는 어렵사리 회생에 성공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밀레니엄 시대가 지향하던 라이프스타일은 스케이트 컬처의 침체를 가져왔다. 이때 반스는 역으로 체질 개선의 의지를 내비치며 회사의 기반을 제조업에서 마케팅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케이트보딩을 필두로 한 액션 스포츠라는 구조 안에 브랜드의 또 다른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아트와 음악, 스트리트 컬처를 통합시켰다. 그 첫 번째 사례가 미국 전역을 돌며 진행하는 음악 투어 ‘워프트 투어 Warped Tour’에 대한 투자다. 이 외에도 반스는 스케이트보딩 비디오를 만들거나 각종 BMX와 서핑 대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왔다. 또한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상당한 규모의 스케이트파크를 지은 것도 반스만이 해낼 수 있던 투자로 꼽힌다. 현재는 이 시설이 브랜드 정신의 핵심으로 자리함은 물론 지역 문화와 청년 문화를 함께 지지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반스는 역으로 체질 개선의 의지를 내비치며 회사의 기반을 제조업에서 마케팅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성공이 행운에 가까웠다면 그 행운을 밑천 삼아 브랜드 문화를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그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필두로 한 액션 스포츠라는 구조 안에 브랜드의 또 다른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아트와 음악, 스트리트 컬처를 통합시켰다.

풋웨어와 어패럴 라인이 함께 어우러진 반스의 산타모니카 매장.
풋웨어와 어패럴 라인이 함께 어우러진 반스의 산타모니카 매장.

청년 문화와 패밀리 문화가 지지하는 브랜드 컬처
반스는 청년 문화를 지지하며 스스로를 신발 회사가 아닌 청년 문화의 홍보대사로 인식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청년 문화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배짱이 아닌, 우리 역시 청년 문화의 일부라는 접근법이다. 청년 문화는 곧 브랜드의 충성도로 이어진다. 너와 내가 같은 브랜드를 선호함으로써 얻는 끈끈한 커뮤니티 같은 것. 그 커뮤니티 문화 사이에 반스는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 정신에 기반한 접근은 VF라는 모회사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VF는 2004년 4억 달러를 들여 반스를 인수했지만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에 충실하다. VF 인수 후 새로운 CEO 케빈 베일리가 부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반 도렌은 회사 내에서 영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반스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갈 수 있도록 대내외적인 대사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헤리티지에 집중한 제품으로 회복한 브랜드의 위상
2000년대부터 레트로 스니커즈의 붐이 인 것도 반스에는 호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반스는 이러한 트렌드에 도취되지 않고 더욱더 브랜드의 본질에 집중하는 전략을 폈다. 반스의 2015년 새로운 캠페인 문구는 ‘오리지널이 되자(Be the Original)’다. 2002년에는 클래식 라인, 즉 헤리티지를 재정의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복원할 인재들을 경쟁 브랜드에서 영입하기도 했다. 잠시 정체기를 겪던 반스의 판매에 물꼬를 튼 건 클래식 라인 덕분이다. 이와 더불어 반스를 신는 연령대도 조금은 높아졌다. 반스의 초반 전성기를 기억하는 30~40대 반스 유저들은 소위 반스 키즈들이다. 이로써 반스는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회상하게 하고, 어린아이들에게는 쿨함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됐다. 이는 단순 스포츠 브랜드가 가질 수 없는 위상이며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브랜드와 유사한 캐릭터를 갖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이패션과의 컬래버레이션을 강화하는가 하면 한편에선 스케이트 기술에 충실한 전문 제품의 개발도 활발해졌다. 2000년대 중반 신디케이트 Syndicate나 볼트 등의 고급 라인 론칭도 이에 발맞춰 이루어졌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변화 감행
또 다른 확장은 어패럴이다. 2006년 브랜드 40주년을 기념해 론칭한 어패럴 라인은 미국에서 120 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어패럴 전문 회사로서 VF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십분 활용한다. 실제로 반스는 이러한 확장을 염두에 두고 액션 스포츠에서 패션과 음악, 아트를 포괄한 스트리트 컬처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행보를 보여왔다. 지금 이 시대 젊은이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포용하는 브랜드로서 변화를 감행하는 중인 것이다. 반스는 이제 스케이트보딩과 어울리는 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브랜드로 잠재력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이는 곧 전 세대를 관통하는 브랜드로서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려는 반스의 의지다.

Nathalie

Le Grand Vefour

Vans
Issue No. 44

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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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 더 월 Off the Wall이라는 슬로건과 고유의 체커보드 패턴 슬립온으로 유명한 반스는 1970년대 초반 현대 스케이트보딩의 창시자로 불리는 토니 알바, 스테이시 페랄타 등을 위해 스케이트보더를 위한 전용 스니커즈를 개발, 출시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유산을 기반으로 액션 스포츠는 물론 음악과 예술, 스트리트 패션 등의 분야에서 청년 문화를 지지, 대변하며 타 스니커즈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독창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