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나래
사진
카일 첸

Steve Chen

스티브 첸
Co-founder,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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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공동 창립자로 채드 헐리와 함께 유튜브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운영해온 스티브 첸은 페이팔 출신의 실력파 엔지니어다. 헐리가 유튜브의 직관적 디자인을 향상시키는 업무를 책임졌다면, 첸은 사용자가 유튜브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안정적인 제반 기술을 갖추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첸은 2006년 구글에서 유튜브를 인수한 이후에도 최고 기술 책임자 자격으로 유튜브의 세계화와 현지화를 위해 앞장서면서 유튜브의 생태계를 확장하는
일에도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당신을 비롯해 ‘페이팔 마피아’라 부르는 초창기 페이팔의 핵심 엔지니어들이 유튜브는 물론 링크드인, 슬라이드, 옐프, 룸 9 엔터테인먼트 등을 설립했는데요, 페이팔에서 일한 경험이 당신의 행보에 얼마나 도움이 됐나요?
페이팔은 닷컴 버블 dot-com bubble (1995~2000년에 나타난 거품 경제 현상으로 닷컴 기업이라 불리는 인터넷 기반 기업이 유행처럼 설립된 시기) 붕괴 직전에 설립해 살아남은 몇 안 되는 회사예요. 초창기 페이팔은 페이팔 계정에 들어온 돈의 이자로만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었지만, 닷컴 버블 뒤에는 정책을 변경해 이베이 eBay의 판매자같은사람이사용할수있는비즈니스계정을 운영하면서 수수료나 이용료를 남겼습니다. 정식 은행이 아니었기에 국가 간 거래는 물론, 미국 내 거래를 놓고도 가타부타 이슈가 많았죠. 이베이와의 경쟁도 심했고요. 페이팔은 닷컴 버블 붕괴에는 살아남아 IPO(기업 공개)를 거쳐 이베이에 인수됐어요. 이후 페이팔의 원년 멤버들은 저를 포함해 각자의 아이디어를 갖고 이베이를 떠났습니다. 페이팔에서의 경험은 대단히 특별하지는 않지만, 회사의 생존이 걸린 돌발 상황에 여러 차례 직면해 돌파해볼 수 있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페이팔 출신의 엔지니어들은 스타트업 초기 단계를 버티고 키워나가는 방법을 터득했고, 그에 부합하는 기업가 정신을 갖추고 있습니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사리지 않거든요.

실리콘밸리의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은 항상 스타트업에 마음이 열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신이 동영상에 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대담하게 유튜브를 개설한 일 또한 실리콘밸리의 유전자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실리콘밸리가 지닌 특수성이 있어요. 가깝게 지내는 모든 이가 스타트업 얘기를 하고, 그러다 보니 창업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죠. 현재 저는 스타트업 환경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지난주 아이들과 스키를 타러 갔다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놓치지 않고 촬영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웃으라고 지시하거나 정확한 타이밍을 찾지 못하더라도 사진 앱이 피사체의 웃는 얼굴을 감지하고 촬영하는 거죠. 약간의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처럼 실리콘밸리의 정신이라 하면 모든 문제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창업하는 일과 창업 이후 어느 정도 규모를 키운 기업을 운영하는 일은 다른 문제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확실한 차이가 있어요. 뛰어난 회사는 대부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노력과 혁신, 두 가지 방향성을 모두 추구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Microsoft, 구글, 유튜브 등이 좋은 예죠. 규모가 크지만, 신제품이나 신기술 개발에 아주 열심이거든요. 하지만 대다수가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보다는 회사의 안정적 운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스타트업은 전체 구성원이 (미래를 대비한) ‘분기별 리뷰’보다는 우선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과제에 집중해요. 팀원 전체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합심해 움직이고요.

현재도 당신과 채드 헐리의 유튜브 이야기는 실리콘밸리의 창업 성공 사례로 거론되곤 합니다. 친구 모임에서 찍은 동영상을 올리기 불편해 유튜브를 만들게 됐다는 일화는 지어낸 것이라는 이야기를 몇몇 인터뷰에서 본 기억이 있어요. 어떻게 유튜브를 구상하게 됐나요?
이젠 실제 이야기가 잘 기억나지 않네요.(웃음) 세쿼이아 캐피털이 유튜브에 첫 번째 투자를 결정하면서 맨 처음 요구한 일은 홍보 에이전시와 유튜브 탄생 설화를 만드는 거였죠. 대다수 스타트업이 이 단계를 거쳐요. 어딜 가도 어떻게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는지를 가장 먼저 묻곤 하거든요. 제 오랜 파트너인 채드와는 페이팔의 동료로 처음 만났습니다. 페이팔에서 근무하는 동안 저희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자주 터놓고 얘기하곤 했지요. 페이팔이 이베이에 인수되면서 저나 채드나 페이팔을 떠나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팰로앨토 Palo Alto에 있는 채드의 집 차고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영상이 유튜브 어딘가에 돌아다닐 거예요. 저희는 처음부터 대대적인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구체적 분야, 예컨대 비디오나 오디오를 이용해 혁신적 데이팅 사이트를 만들자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죠. 이를 위해 3개월가량 동영상 업로드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매달렸는데요, 지금의 유튜브가 그때 열심히 만든 트랜스코딩 transcoding(단일 환경을 목표로 제작한 음성, 데이터, 영상 등 멀티비디오 콘텐츠를 다른 환경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가공, 선별, 변환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하니 노력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죠. 하지만 데이팅 사이트가 뜻대로 되지 않았고, 모두 다 접고 포기하기 직전 사람들이 올리고 싶은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웹사이트나 만들자고 생각해 유튜브가 탄생하게 됐지요. 초반엔 사람들이 실수로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것 말고는 자체적으로 영상을 제작해 올리려는 흐름이 거의 없었습니다. 인기가 전혀 없었죠.

유튜브가 인기의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된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나요?
유튜브가 유명해진 건 ‘바이럴’ 영상 때문이었어요. 귀여운 고양이나 강아지가 등장하는 영상 또는 나이키의 ‘터치 오브 골드’ 같은 광고가 입소문을 타면서 차츰 사람들이 유튜브에 접속하기 시작했죠. 유튜브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엄마와 아기가 나오는 아주 귀여운 영상’ 같은 제목을 붙인 1분짜리 동영상을 공유하곤 했어요. 수백만이 넘는 사람이 영상을 보고 그걸로 끝이었죠. 하지만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고 가까운 이에게 링크를 전달하면서 관심을 표시했고, 유튜브 또한 그로 인해 점유율이 높아졌습니다. 유튜브의 퍼 나르기 기능을 통해 마이스페이스나 페이스북으로 퍼진 영상도 유튜브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됐고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스티브 첸의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B>  '유튜브' 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ernd Körber

Robert Kync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