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희진
사진
윤미연

Robert Kyncl

로버트 킨슬
Chief Business Officer,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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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20년 동안 인터넷 미디어와 콘텐츠 비즈니스업계에서 경력을 쌓아온 로버트 킨슬은 HBO, 넷플릭스를 거쳐 현재 유튜브에서 최고 비즈니스 책임자로 플랫폼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콘텐츠라 할 만한 것이 없던 사회주의국가부터 기술의 진화에 힘입어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 창작자를 받아들인 미디어 환경까지, 미디어 비즈니스의 극단을 경험한 그는 유튜브가 콘텐츠 경험뿐 아니라 미디어 비즈니스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미래를 견인하는 것은 저마다 하나의 비즈니스로 성장하며 정교한 사업 감각을 키우는 크리에이터다.

분리하기 전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TV에서 아무것도 방송되지 않던 콘텐츠 불모지에서 오늘날 궁극의 콘텐츠 비즈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튜브까지 이른 여정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요?
제가 태어나고 자란 체코슬로바키아는 공산주의 국가였습니다. 그 안에서 시청할 수 있는 채널은 고작 2개뿐이었어요. 그 채널에서는 대부분 체코슬로바키아 내에서 제작한 콘텐츠를 방영했고, 몇몇 해외 국가에서 선별한 콘텐츠를 종종 방송하기도 했어요. 라디오 방송국도 마찬가지로 콘텐츠가 매우 한정돼 있었죠. 하지만 그보다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시 저희로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저희가 알고 있는 세상은 그것뿐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유럽의 철의장막이 무너졌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고, 저희 눈도 뜨였어요. 당시 젊었던 저는 다른 나라에서 기회를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 미국 뉴욕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겨 덥석 잡았습니다. 뉴욕에서 대학을 마치고 LA의 경영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미디어업계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한 연예 기획사의 우편물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 어시스턴트로 승진했고요.(웃음) 거기서부터 지금까지 쭉 커리어를 쌓아온 거예요. 하지만 결정적 전환점은 2000년에 찾아왔습니다. 그해 저는 HBO를 떠나 알피 Alfy라고 하는 벤처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아동 콘텐츠와 구독 서비스에 주력하는 회사였죠. 제가 제대로 인터넷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그때였어요.

철의장막이 무너진 후 서구 문화에 깊은 자극을 받아 영어 공부를 결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문화적으로 가장 충격적이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죠. 저는 CNN을 통해 영어를 배웠습니다.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가 개방되자마자 CNN이 들어왔지만, 그 내용이 번역되지는 않았어요. 그때 저는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참이었는데,나라안에영어를할줄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CNN은 원어민이 직접 말하는 영어를 들으면서 청취 연습을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지요. 그로부터 15년 뒤에 안 사실은 번역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 CNN의 창립자 테드 터너 Ted Turner의 의도였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면 싸울 일도 적을 것이라 생각한 거죠. 그만의 평화주의적 태도로 세상에 나름 이바지한 거예요. 최소한 저한테는 효과가 있었죠.(웃음) 그 외에 문화적으로 충격을 받은 부분은 TV 광고였어요. 국가가 개방되고 시장에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TV 광고로 그 제품이 알려지는 현상이 매우 놀라웠습니다. 시장이란 게 존재하지 않던 경제 체제에서는 그런 식으로 광고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또 다른 충격은 뮤직비디오였습니다. 춤과 안무로 만들어지는 뮤직비디오는 보기만 해도 즐거웠어요. 클래식 음악과 작곡가로 유명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다뤘습니다. 저 역시 학창 시절에 바이올린, 첼로, 기타를 배웠죠. 음악에 이런 즐거운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유튜브 이전에 넷플릭스의 콘텐츠 부사장으로서 넷플릭스의 결정적 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닌 프로젝트를 이끌었습니다. 바로 DVD 렌털 서비스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전환입니다.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미디어 산업 전체에 이정표를 남긴 행보였어요.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07년이지만, 프로젝트 자체는 2005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스트리밍에 대한 의지가 있어도 기술적 이유 때문에 실행할 수가 없었어요. 인터넷 대역폭이 따라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모두가 다운로드 형식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을 논의했죠. 저는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미디어 회사도 판권을 내주고 싶어 하지 않았거든요. 그 회사들은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건’ 단위로 대여하거나 판매하기를 원했죠. 하지만 넷플릭스는 구독 서비스 비즈니스이기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갈등을 지속적으로 안고 갔어요. 끝내 극복하긴 했지만요. 2006년에도 다운로드 방식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때는 영화 하나를 다운로드하는 데 8시간이 걸렸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밤새 다운로드하고 다음 날에 보면 되잖아요.(웃음) 그런데 그때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 Reed Hastings가 저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요즘 유튜브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서는 클릭하면 바로 재생이 된다고 하더군. 클릭하고 8시간을 기다리면 재생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 1년에 걸쳐 서비스 구축을 완료했어요. 여전히 대역폭은 좁았고 시스템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론칭한
시점에는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넷플릭스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도박이었죠.

많은 이가 넷플릭스를 TV의 미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유튜브는 무엇의 미래라고 생각하나요?
유튜브는 미디어 회사들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미래의 미디어 회사라는 뜻이 아닙니다. 유튜브를 통해 부상한 크리에이터 세력이 차세대 미디어 회사라는 뜻이죠.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유튜브 공간에는 콘텐츠가 무제한으로 축적되고 있습니다. 그 덕에 콘텐츠의 다양화, 크리에이터의 다양화를 실현할 수 있어요. 누구든 보고 싶은 영상의 토픽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유튜브에서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저희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들은 스스로 콘텐츠 규모를 키워가며 수익을 창출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독립적으로 유지합니다. 그다음엔 개인의 팀을 꾸리고,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시작하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보면 독자적 미디어 회사로 거듭나 있어요.

유튜브가 하나의 생태계를 만든 셈이네요.
맞습니다. 사용자, 크리에이터, 광고주라는 세 요소로 이루어진 생태계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이 구조를 항상 바퀴에 비유하곤 합니다.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공개하면 사용자가 콘텐츠를 시청합니다. 플랫폼에 사용자가 있으면 광고주는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죠. 그리고 광고주가 광고 비용을 내면 그것이 크리에이터에게 수익으로 돌아갑니다. 크리에이터가 얻는 수익이 많을수록 더 많은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콘텐츠가 많아지면 사용자의 시청 경험은 더욱 즐거워지죠. 그 덕에 사용자가 시청하는 콘텐츠가 많아지면 참여하길 원하는 광고주도 늘어납니다. 이렇게 바퀴처럼 돌아가는 거예요. 물론 그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지만, 그 갈등을 조정하고 바퀴가 계속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입니다.
 

로버트 킨슬의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B>  '유튜브' 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Zaim Kamal

Nicolas Baretzki

Youtube
Issue No. 83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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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 출신의 공동 창립자 3명이 2005년 선보인 유튜브는 누구나 편리하게 영상을 올리고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주목받으며 순식간에 수많은 사용자를 불러 모았습니다. 영상 스트리밍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일반인에게 창작의 수단을 쥐여주고 그들이 자유롭게 제작한 콘텐츠를 축적해온 결과, 유튜브는 누구나 자신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찾아 원하는 방식으로 시청할 수 있는 거대한 온라인 미디어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또 콘텐츠에 대한 광고 수익을 보장함으로써 ‘유튜버’라 일컫는 개인 크리에이터가 하나의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하는 생태계를 창조하는 데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