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브랜드의 사업 전략 중 몽블랑의 해법은 유례없이 독특하다. 몽블랑은 필기구와 시계와 가죽 제품이라는 상반된 제품군을 생산하고 유통한다. 각 제품은 몽블랑의 로고와 마케팅을 공유하지만 경쟁자와 시장 상황에 따라 조금씩 포지션이 다르다. 몽블랑은 세 가지 상이한 사업 영역을 꾸리면서도 부침이 심한 럭셔리 업계에서 살아남아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몽블랑의 성공 비결을 이해하는 것은 브랜딩과 럭셔리의 근원과 숙제를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190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작된다.

몽블랑의 형성기
독일 엔지니어 아우구스트 에베르슈타인 August Eberstein이 미국에서 본 만년필이라는 물건을 독일에서 만들어 판매한 시점은 1906년이다. 에베르슈타인은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자금 등의 사업 요소를 지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에베르슈타인 뒤에는 알프레드 네미아스 Alfred Nehemias가 있었다. 이 사람이 최초의 몽블랑을 만든 세 명의 신사 중 한 명이다. 네미아스도 사업을 지속하려면 더 큰 후원자들이 필요했다. 그는 기업가 요하네스 포스 Johannes Voss에게 만년필 사업을 제안했다. 포스는 새로운 필기구 사업에 관심이 있어 네미아스의 제안에 구미가 당겼지만,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름을 드러낼 수 있는 파트너가 찾은 결과 근처에 살고 있던 전직 공무원 출신 투자자 막스 코흐 Max Koch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이 회사를 등록한 시점이 1908년이다. 창립 연도가 1906년인지 1908 년인지에 대한 토론이 생기는 이유다. 펜을 만든 에베르슈타인의 역사보다 돈이 있는 세 신사의 역사가 더 중요했는지, 보통 몽블랑의 역사는 1908년부터 시작된다고 일컬어진다. 심플로 필러 펜 코 막스 코흐 SIMPLO Filler PEN co Max Koch. 1908년에 시작한 이들의 회사이름 어디에서도 몽블랑을 찾아볼 수 없다. 이때의 이름은 몽블랑이 아니었다. 몽블랑이라는 제품명은 1910년에 처음 쓰기 시작했고, 몽블랑이란 사명이 정식으로 등록된 건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34 년이다. 함부르크의 신사 세 명이 몽블랑 근처 지역 등의 요소와 직간접적 관련이 있던 것도 아니다. 이들은 그냥 고품질 펜의 지위를 상징할 수 있는 이름을 생각하다가 유럽 알프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몽블랑을 떠올렸을 뿐이다.

위기에서 기회까지
몽블랑은 훌륭한 펜 브랜드지만 기술적으로 최초의 펜 브랜드는 아니다. 만년필 기술과 시장의 원조는 미국이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이 전쟁에 불타는 바람에 덴마크로 생산 기지를 옮기기도 했다. 세상은 계속 변했고 몽블랑은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았는데, 1959년 프랑스에서 빅 크리스털 Bic Crystal 볼펜이 출시되며 몽블랑을 비롯한 만년필 업계는 모두 지반이 흔들리는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저렴하고 효율적인 신기술을 내세운 빅 크리스털을 당시 몽블랑을 비롯한 유명 만년필 제조사들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었다. 당시 펜 산업의 강자들은 자연스럽게 볼펜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1952년에 희대의 아이콘 만년필인 149을 완성한 몽블랑마저도 이 시대의 흐름을 피할 순 없었다. 1960년대에는 볼펜의 모양을 본떠 모던한 모양의 만년필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는 성공을 거두지 못해 결국 외부 자본을 받아들였고 이는 몽블랑을 운명을 바꾸게 되었다. 1977년부터 영국의 던힐 Dunhill이 몽블랑의 주주가 되었고 애매한 상품군을 정리해버렸다. 그중에서도 상징적인 149은 계속 생산했고 경기가 풀리자 사람들은 다시 비싼 물건들을 찾기 시작했다. 몽블랑이 최초의 만년필은 아니지만 몽블랑은 아이콘을 최후까지 남겨둔 브랜드였다. 몽블랑은 이 시기를 거쳐 고급 만년필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럭셔리 브랜드의 길
몽블랑은 1992년 처음 ‘작가 에디션’ 한정판 펜을 출시한다. 작가 에디션의 첫 주인공이 된 작가는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을 쓴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였다. 고전적인 149 본체에 보디의 색을 다르게 하고 캡에는 헤밍웨이의 사인을 새겼다. ‘그 펜의 주인공을 위해 특별한 요소를 더한다’는 몽블랑 한정판 펜의 디자인 언어가 여기서 출발했다. 이 펜은 아주 큰 인기를 끌어서 지금도 2000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몽블랑의 한정판 펜의 성공은 새로운 소비자층을 확립시켰다. 수집가에게. 까다롭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아주 충성스러운 소비자들에게. 몽블랑이 1990년대에 한 일을 보면 이들의 새로운 소비자층에게 다가가려던 노력을 알 수 있다. 몽블랑은 헤밍웨이 한정판이 나온 1992년, 독일의 가죽 회사 제거 Seeger도 인수했다. 1995 년부터는 제거의 설비를 이용해 가죽 제품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96년부터는 목걸이·반지 등의 귀금속을, 1997년부터는 손목시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는 선글라스와 향수까지 출시했다. 제품군을 늘린 만큼 새로운 매장을 여는 데도 열심이었다. 몽블랑은 1990년대에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홍콩에 해외 단독 매장을 열고, 1999년에는 뉴욕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기존의 고가 펜 브랜드를 만들 때와는 완전히 다른 행보였다. 펜을 중심으로 하되 펜만 팔지 않는, 일종의 ‘럭셔리 메종’이 된 것이다. 명품화를 시도하든, 파카처럼 볼펜 전문 제조사가 되든, 몽블랑은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확실한 길을 선택해야 했다. 몽블랑은 기로의 순간 ‘명품 되기’를 골랐다. 몽블랑이 ‘명품 되기’라는 고급스러운 전략을 시도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단연 이들의 제품이었다. 몽블랑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만년필을 잘 만드는 회사다. 평생 만년필을 연구한 박종진은 “몽블랑은 그 비용을 감수하고 스스로가 정의하는 내구성이란 보편성에 충실합니다.”라고 말하며 펜의 품질을 칭찬한다.

또한 몽블랑은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더 넓은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몽블랑의 대주주가 된 던힐은 1985년 몽블랑을 완전히 인수했고 이후 까르띠에 Cartier와 합병해서 1993년 ‘방돔 럭셔리 그룹 Vendôme Luxury Group’을 만들었다. 그룹 방돔은 1998년 스위스의 럭셔리 제품 회사 리치몬트 그룹에 인수되었다. 몽블랑은 시장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더 넓은 시장으로 나가려 했고, 이내 가죽 제품, 시계, 귀금속, 향수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시켰다. 진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몽블랑은 자신이 속한 제품군별로 제품의 포지셔닝을 다르게 가져가는 아주 독특한 전략을 취한다. 필기구는 대중적인 가격부터 초고가 펜까지 있다. 가죽 제품은 가격대성능비로 승부한다. 시계는 고가 시계군에 계속 도전하지만 상세 스펙을 보면 늘 경쟁자에 비해 가격대성능비나 마무리가 좋다. 제품별로 다른 포지셔닝을 통해 몽블랑은 치열한 시장 속에서 럭셔리 브랜드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00년을 버틴 기술
시계는 몽블랑의 현재와 미래, 전략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품목이다. 몽블랑은 1997년 시계를 처음 만든 후 몽블랑 만년필의 단정하고 보수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손목 위에 올린 듯한 시계를 만들어왔다. 이는 2007년을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160년 된 스위스의 전통 시계 브랜드 미네르바를 인수한 후부터 몽블랑은 조금 더 저돌적으로 시계업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몽블랑은 진지한 시계 브랜드가 되기 위해 최고급 한정판 시계를 계속 출시하고 있다. 몽블랑은 스위스의 시계 생산 라인과 함부르크의 만년필 생산 라인을 완전히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최선을 다해 시계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몽블랑의 원천 기술이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몽블랑의 진짜 원천 기술은 제작 기술이 아니라 (물론 제작도 훌륭하다) 고객을 파악하는 관찰과 통찰력이다. 작은 면적 안에서의 정밀한 기술적 완성도, 그 안에서 드러나는 공예품의 아름다움, 헤밍웨이 만년필처럼 그 물건 안에 담아둔 의미, 한정 생산이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물욕, 성취욕을 부추기는 높은 가격까지. 몽블랑은 남성용 고가 사치품에 집중하면서 그 사이에서 사람들(주로 남자들)이 일상에서 자사의 모든 제품을 사용하길 원한다. 비즈니스맨을 위한 단정하고 가격대성능비가 좋은 아이템이 있다. 돈을 더 쓰고 싶으면 더 비싼 것도 있다. 돈에 제한이 없는 수집가라면 홈페이지에는 나오지도 않는 2억 원짜리 시계나 만년필도 있다. 펜으로 시작한 브랜드가 찾아낸 21세기의 생존 전략이다.

시대별 어려움을 넘어 살아남은 몽블랑에 한 번 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밀레니얼, 스마트폰, 인스타그램은 몽블랑을 돕고 있다. 2019년 6월 <워싱턴 포스트>도 ‘만년필이 돌아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런 세태를 짚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젊은 친구들은 적게 쓰기 때문에 그만큼 쓰기 경험이 중요해졌고, 동시에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을 만큼 그럴듯한 물건을 찾는다. 리치몬트 그룹의 애뉴얼 리포트에 따르면 그룹의 다른 사업 영역인 귀금속이나 시계, 유통 등은 매출 그래프가 요동치지만 필기구는 꾸준히 1%부터 5%까지 매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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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No.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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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은 1906년 함부르크에서 만년필 전문 제조사로 시작해 뛰어난 품질과 특유의 균형 감각으로 질 좋은 만년필을 만들어왔습니다. 만년필의 시대가 가고 볼펜의 시대가 오면서 몽블랑은 만년필의 이미지를 활용한 럭셔리 브랜드로 탈바꿈했으며, 가죽제품과 시계라는 별도의 사업 영역에도 안착했습니다. 주력 제품인 필기구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다른 상품에 이식시키는 독특한 전략은 럭셔리 제품의 유통 구조가 변하고 밀레니얼이라는 새로운 소비자층이 탄생한 2010년대에도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