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헤밍웨이 등 전설적인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사용한 노트로 알려진 몰스킨의 역사는 1995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디자이너가 ‘예술가의 노트’라는 콘셉트를 걸고 단종된 과거의 노트를 복각하며 시작되었다. 이후 몰스킨은 ‘쓰이지 않은 책’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동시대의 유명 인사와 예술가, 혁신적인 사업가들의 창조적 열망이 담긴 노트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노트업계의
 뉴 클래식’으로 독자적인 입지를 다져왔다.

희미한 전설에서 명민한 브랜드로
앙시엔 코메디 Ancienne Comedie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와 크고 작은 서점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이곳은 당연하게도 지성인의 유서 깊은 아지트였다. 장자크 루소부터 발자크까지 수많은 사상가와 작가들이 골목을 누볐고,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바다 건너 송고할 기사를 써 내려간 곳도 여기였다. 걸출한 산문가이자 타고난 여행자 브루스 채트윈 Bruce Chatwin도 이 거리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근처의 문구점에서 자신이 애용하는 노트를 구입하곤 했다. 검은색 노트 안쪽에는 언제나 자신의 이름과 주소, 분실 시 지급할 사례금을 적었다. 파타고니아 여행에서는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칠레의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 Luis Sepulveda에게 여분의 노트를 선물했고, 호주의 오지로 떠나기 전엔 한 가게에서 100권이나 구입하기도 했다. 호주 여행이 남긴 책 ‹송라인 The Songlines›에는 그 노트를 그린 문장이 실려 있다. “나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공책을 꺼냈다. 기름을 먹인 천으로 감싸고 페이지를 고정할
수 있도록 고무줄을 달아놓은 공책이었다. (...) 프랑스에서는 이런 유의 공책을 ‘카르네 몰스킨 Carnets Moleskines’이라 불렀다.” 이제 우리는 그 노트를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다. 피카소와 헤밍웨이는 프랑스제 검은 유포지 노트를 사용했지만, 브랜드 몰스킨의 역사는 1995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밀라노의 디자이너 마리아 세브레곤디 Maria Sebregondi는 ‹송라인›을 읽으며 채트윈의 공책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세브레곤디는 디자인 스튜디오 모도 앤 모도를 찾아가 옛 노트를 부활시키자고 제안했다.

1997년에 모도 앤 모도는 5000권을, 다음 해에는 3만 권의 노트를 제작했다. 1997년엔 몰스킨을 
상표로 등록했다. 세브레곤디와
 모도 앤 모도는 과거의 예술가들과 얽힌 몰스킨의 역사에서 영감을 받았다. 문구점이 아닌 서점에 부스를 마련하고, 브루스 채트윈이나 피카소의 사진을 걸어놓은 후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이라는 슬로건으로 빈 노트를 판매했다. 몰스킨은 갓 탄생한 브랜드였지만, ‘2세기가 넘도록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써온 전설적 노트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그 문구는 완전히 틀린 것도, 완전히 옳은 것도 아니었지만 소비자들은 글을 쓰며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듯’한 노트의 이미지에 열광했다.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도구 관련 시장은 여전히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장의 일부는 디지털 디바이스로 넘어갔습니다.” CEO 아리고 베르니의 이 말에는 어떤 탄식도 섞여 있지 않다. 오히려 몰스킨의 현재는 디지털 디바이스 사업이 가장 역동적이다.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를 잇는 가교가 되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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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멈추지 않은 성장세
1998년 몰스킨은 유럽 전체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에 진출했다. 2006년 모도 앤 모도는 사모펀드에 인수되었고, 프랑스 금융회사 신테그라 캐피털 Syntegra Capital에 6000만 유로로 매각됐다. 신테그라 캐피털은 회사 이름을 아예 몰스킨으로 바꾼 후 세계적인 브랜드를 맡았던 아리고 베르니 Arrigo Berni를 CEO로 영입했다. 2011년 몰스킨은 사업을 확장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여행용품을 론칭했다. 2012년 몰스킨 컬렉션은 95개국, 2만2000개 상점에서 유통된다고 집계됐다. 2013년, 몰스킨은 이탈리아의 보르사 이탈리아나 Borsa Italiana에 상장했다. 공모 주식
수의 3.6배 수요가 몰렸다. 2015년 몰스킨의 매출은 1억2800만 유로에 달했다. 2016년엔 벨기에의 자동차 유통 기업 디테랑 D'Ieteren이 몰스킨 지분 41%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합의가 진행될 당시 몰스킨의 기업 가치는 5억900만 유로로 추산되었다. 몰스킨은 매년 30%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세계 문구 시장의 성장률은 5% 미만이다.

창조적 열망과 팬덤의 힘
몰스킨이 발전하는 데 애호가들의 존재는 언제나 중요했다. 몰스키너리를 비롯한 일종의 동호회 회원들은 자신이 사용한 노트 사진을 온라인에서 공유했다. 브랜드의 슬로건 그대로 ‘쓰이지 않은 책’에는 팬 각자의 삶과 ‘창조적 열망’의 결과물이 기록됐다. 몰스키너리로 시작한 애호가들의 연합은 몰스킨 공식 웹사이트의 플랫폼 ‘마이몰스킨 myMoleskine’에 정착했다. 몰스킨은 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몰스킨은 위대한 사람들의 자기 표현을 노트에 실어 보여주며 브랜드의 메시지를 파급한다. 런던과 뉴욕, 도쿄, 상하이, 이스탄불 등 전 세계를 순회하며 꾸준히 이어온 ‹디투어 Detour› 전시가 그중 하나다. ‹디투어›는 몰스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비영리재단인 몰스킨 파운데이션 Moleskine Foundation이 몰스킨과 협력해 진행한 프로젝트로 예술가와 건축가, 그래픽 디자이너, 영화감독 등이 몰스킨에 쓴 글과 그림을 전시하고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이어갈 아트워크를 독려한다. 여행용 가방과 연필, 앨범, 전시 등으로 확장되어온 ‘코어 스토리’는 2016년 7월 밀라노에 오픈한 몰스킨 카페로 이어졌다.

쓴다는 것의 미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도구 관련 시장은 여전히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장의 일부는 디지털 디바이스로 넘어갔습니다.” CEO 아리고 베르니의 이 말에는 어떤 탄식도 섞여 있지 않다. 오히려 몰스킨의 현재는 디지털 디바이스 사업이 가장 역동적이다.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를 잇는 가교가 되려 합니다. ” 베르니는 레고에서 디지털 사업을 주도한 전략가를 영입했다. 레고의 플라스틱 블록 또한 철저하게 물질과 촉감의 세계에 속하지만, 이들은 브랜드의 핵심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웹 게임과 온라인 토이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몰스킨이 가고자 한 길도 이와 비슷했다. IT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 중 가장 화제가 된 건 2012년에 선보인 에버노트 스마트 노트북이다. 에버노트는 종이 노트와 연동되는 기능을 개발했고, 몰스킨은 유선과 격자로 나눠 페이지를 디자인하고 스티커를 제작했다. 어도비와의 협업도 유명하다.

2016년, 몰스킨은 스마트라이팅 세트를 선보였다. 알루미늄 재질의 스마트 펜 네오 Neo는 펜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디지털화하는 적외선 카메라를 갖췄다.
 전용 노트인 페이퍼 태블릿에서는 다른 노트들처럼 쓰거나 그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디지털의 자유로움과 편리함을 바로 수용하면서도, 아날로그 브랜드가 디지털 사업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장점과 한계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몰스킨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 확신하고 있었다. 협업의 성과물부터 자체적으로 개발한 스마트라이팅 세트까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내면서도 이들은 ‘손글씨’의 가치를 믿었다. 몰스킨이 걸어온 길은 과거와 미래를 다채롭게 포함하지만, 거기엔 그 어떤 아이러니도 없는 것이다.

Sylvie Bétard

Bo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