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나래
사진
윤송이

Jean Touitou

장 투이투
Founder, A.P.C.
No_78_KR_1쇄_Preview_HQ(드래그함)-1

아페쎄의 창립자인 그는 아페쎄를 통해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며, 사람들이 아페쎄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는 다소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페쎄의 본사 사무실과 멀지 않은 위치의 아틀리에, 그리고 당신의 집 모두 파리 6구에 있습니다.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열 살 때 부모님과 튀니지 Tunisie에서 이민을 왔습니다. 파리에 정착할 당시 제일 처음 살던 곳이 바로 이 지역이었죠. 저에게는 6구에 머무는 일이 무엇보다 자연스러웠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 그런데 파리 13구에 있는 굉장히 흥미로운 건물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렀어요. 파리에서 제일 먼저 생긴 고층 아파트인 투르 알베르 Tour Albert로 건축가 중 한 사람인 에두아르 알베르 Édouard Albert의 이름을 딴 건물입니다. 현재는 박물관이 딸린 역사적 건물로 지정됐고요. 부모님과 12년간 그 아파트에서 살다가 독립해서 저는 6구로 돌아왔습니다. 파리에 머무를 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한번 들러보세요. 많은 영감을 줄 겁니다. 제 오피스엔 그동안 직접 파리 곳곳을 다니며 발견한 흥미로운 지역을 표시한 지도가 있는데, 궁금하다면 보여줄 수 있어요.

패션 브랜드 겐조와 아녜스 비를 거쳐 1987년 처음 ‘이베르 87’이라는 단순한 이름으로 아페쎄를 시작했는데요, 그 당시 패션 신은 어떠했나요?
‘이베르 Hiver(겨울) 87’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 기간인 2년 동안 다른 브랜드에서 일했어요. 흔히 말하는 ‘고스트 디자이너’였습니다. 그 기간까지 포함한다면 아페쎄는 1985년부터 조금씩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패션은 변함없지만, 당시에는 패션의 비중에서 옷이 90%, 액세서리가 10%를 차지했다면, 현재는 액세서리가 전체 비중의 90%를 차지합니다. ‘옷을 이야기하는 패션’이 사라져버린 거죠. 요사이 우리가 말하는 패션이란 건 결국 액세서리 산업을 뜻한다고 할 수도 있어요. 패션 위크 동안 사람들이 “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옷들은 결국 브랜드의 아틀리에에서 한 벌씩 제작해 선보인 것이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옷이란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런 상황들은 다 괜찮아요. 보기엔 굉장히 아름다우니까요. 하지만 저에겐 옷이나 패션처럼 보이지 않아요. 아트에 더 가깝죠.

과거엔 현재에 비해 패션 산업에서 옷을 더 많이 다루었다는 이야기인가요?
이전에는 옷, 그러니까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패션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면 요즘은 아니에요. 지금 사람들은 패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 옷을 쉽게 살 수가 없습니다.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에요. 그 대신 디자인을 카피한 대용품을 사는 것이죠. 저는 지금 소수를 타깃으로 하는 니치 마켓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패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아페쎄는 ‘창작과 제작의 아틀리에’의 줄임말입니다. 아페쎄를 소개하는 보도 자료에는 “창작이 없는 옷은 영혼이 없고, 프로덕션이 없는 옷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는 문구가 기재돼 있습니다. 창작과 프로덕션에 대한 당신의 정의가 궁금합니다.
(종이에 그래프를 그리면서) 제 생각에 패션은 일종의 물리 법칙(physical) 같은 것이죠.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해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요. 이 그래프를 보면 패션은 창작이 적힌 왼쪽 좌표와 프로덕션이 적힌 오른쪽 좌표 사이 가운데쯤에 놓여 있을 겁니다. 만일 패션이 창작 쪽으로 치우치면 너무 잘난 체하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아무도 사지 않겠죠. 반대로 패션이 프로덕션 쪽으로 치우친다면 지난 시즌의 무드를 보고 컴퓨터로 뽑아낸 듯한 지루한 옷이 될 테고요. 아페쎄엔 바로 이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뭔가를 만들거나 행하는 공간을 일컫는 워크숍이자 아틀리에에서 창작과 프로덕션의 균형을 맞추는 일, 제겐 이것이 패션입니다. 저희 팀원들과도 아페쎄가 만드는 것이 대략 그래프의 어디쯤 위치할지를 점검해보고 의견을 나누는데, 대체로 저는 창작에 더 가까울 때가 많아요. 회사의 경영 관계자들은 “장, 하프 문 Half Moon 백 같은 걸 한번 더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하죠. 일단 잘 팔릴 테니까요.

 

45

파리에 와서 살펴보니 아페쎄 옷은 10대부터 60대까지 누구나 소화할 수 있는, 프랑스 사람들의 일상복이자 일종의 ‘에센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페쎄가 에센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움, 정확하게는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 저희의 진정한 목표입니다. 제가 지금 손가락에 낀 이 반지를 보세요. 아페쎄 여성복의 디자인을 맡고 있는 샤를로트 슈네 Charlotte Chesnais와 같이 디자인한 이 반지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금으로 만든, 굉장히 단순해 보이는 이중 링입니다. 하지만 여기 이렇게 바깥 링을 위로 밀면 그 속에 다이아몬드가 숨어 있는 걸 볼 수 있죠. 바로 이것이 제가 아페쎄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아름다움을 내포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것요. 저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내포하기 위해 아페쎄는 어떤 노력을 하나요?
제 지인이기도 한 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라면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아요. 맨 처음 그가 녹음한 음원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너무 상업적이다”라고 얘기할 거예요. 그는 처음 만든 음원에서 하나씩 군더더기를 빼내는 작업을 반복하고 마침내 실질적으로 우리가 들었을 때 멋진 곡을 완성합니다. 아페쎄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저희가 하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게끔 만드는 겁니다. 솔직히 저는 어떻게 하면 패션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실제로 과거에 그렇게 해본 적도 있죠. 몇 가지 확실한 트릭이 있거든요. 하지만 아페쎄는 그 길을 가지 않지요. 저희가 잘난 체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야심(ambition)이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예술적으로 더 흥미롭다고 믿기도 하고요.

아페쎄의 미학은 아페쎄를 경험하는 것에서 나오고, 그를 통해 새롭게 정의된다고 받아들이면 될까요?
우리가 근사하게 옷을 차려입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자기 자신의 순수한 기쁨과 만족감을 위해서이고, 때때로 특정 상대를 염두에 두고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예요. 후자의 경우엔 옷을 입는다는 행위가 어떤 코드를 상대에게 전송한다는 의미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저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진 않아요. 제가 인류애가 없다는 말이 아니고요, 모든 사람이 저를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저는 패션쇼장을 찾았을 때 파파라치가 저를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일이 행복하거든요. 그들이 저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알아채길 바라지 않으니까요. 대신 저는 저와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을 즐깁니다. 이 세상에 저와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은 제법 많이 존재하고, 그건 아페쎄의 제품이 1년에 100만 개가량 팔린다는 사실이 방증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아페쎄에서 당신이 맡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은 브랜드의 이미지나 전략을 구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책을 찾는 일 또한 저의 가장 큰 역할이죠. 예컨대 가방 사업이 커지기 시작한 6년 전 무렵 가죽 공급에 차질이 생겼는데요, 그때 제가 직접 가공 전 상태의 소가죽을 구해 가공하고 동일한 상태로 만들어줄 만한 사람을 찾아 계약했죠. 저의 할아버지가 무두질 공장을 소유했고, 아버지 역시 가죽 판매 사업을 했기 때문에 가죽을 만지는 일은 제가 가장 잘 아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저는 무언가를 제대로 만드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런 과정에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어요. 아페쎄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가이하라 씨 같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게다가 저는 아페쎄의 많은 것을 직접 설명하고 글로 써요. 보도 자료도 말이죠. 전 사실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라서 그냥 누가 쓰게끔 내버려둘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게 싫습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얘기가 아니니까요. 정말 많은 브랜드가 기계적으로 ‘아이코닉’ 같은 패셔너블한 단어를 매번 보도 자료에 기재하는데,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요.

아페쎄는 칼하트 Wip, 제시카 오그든처럼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추고 있는 브랜드나 디자이너가 많은 브랜드입니다. 아페쎄와 함께할 파트너를 찾거나 선택하는 데서 특정한 기준이 있다면요?
저는 그들을 선택(choose)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레 삶에서 그들을 만난 거죠. 선택이라기보다 ‘팔로잉 following’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지금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무너지고 있어서 여럿이 힘을 모아 그룹을 형성하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패션 필드는 몇몇 거대한 그룹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고, 그 속에서 저희처럼 작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의 힘이 필요합니다. ‘어벤저스 Avengers’처럼 말이죠. 인터랙션은 홀로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다른 걸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카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을 실천하는 프로젝트예요. 비틀스 The Beatles의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이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작곡했을 때 100번 넘게 기타를 치면서 그 곡을 불렀지만 결국엔 에릭 클랩턴 Eric Clapton에게 그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했죠. 저희의 세 번째 인터랙션 파트너인 브레인 데드 Brain Dead 역시 이 경우에 속해요. 제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제가 할 수 없는 거라서 그들에게 대신 요청한 거죠.

 

장 투이투의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B>  '아페쎄' 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Ronan & Erwan Bouroullec

Virginie Viard

A.P.C.
Issue No. 78

A.P.C.

구매하기
아페쎄는 1987년 프랑스 파리에서 장 투이투가 ‘이베르 87’이라는 이름의 남성복을 선보이면서 출발한 브랜드입니다. 프랑스어로 ‘창작과 제작의 아틀리에(Atelier de Production et de Création)’라는 의미의 줄임말인 아페쎄는 유행이나 시대의 변화를 좇지 않고 품질 높은 에션셜 아이템을 만드는 것으로 독자적 미학을 구축했습니다. 일본산 셀비지 데님, 하프 문 백, 주디스 샌들 같은 아이템이 대표적으로 파리를 비롯해 도쿄, 런던, LA 등에 세계적 팬층을 형성하며 내실 있는 성장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