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이지은
사진
제임스 넬슨

Ivan Pericoli

이반 페리콜리
Co-Founder·Designer, Astier de Villa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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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성향의 이탈리아 출신 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이반은 베누아와 만나면서 아스티에 드 빌라트라는 세계를 창조했다. 그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가 하루하루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생동하면서 모험하는 인문과도 같다고 말한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라는 브랜드는 유명하지만 당신과 베누아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는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나요?
우리 둘은 매우 다른 환경에서 자랐어요. 베누아와 그의 가족은 클래식한 프랑스 스타일이에요. 그의 외할아버지는 레지스탕스 운동가였고, 아버지 쪽에 예술가가 많았습니다. 그가 로마의 빌라 메디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도, 베누아에겐 제겐 없는 견고한 프랑스 문화와 감성이 짙게 남아 있어요. 제 부모님은 모두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우리 가족은 뭐랄까, 좀 더 이상하고 자유롭고 변화무쌍해요. 제 부모님은 히피 문화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아파트에 딸린 꼭대기 층 방엔 매일 전 세계에서 온 음악가와 연주가가 찾아오고 머무른 기억이 나요. 마치 뉴욕의 호텔 첼시 Hotel Chelsea(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등 유명 명사가 장기간 묵곤 했던 호텔)처럼 말이죠. 저와 베누아의 성장 환경은 이렇듯 다르지만 제가 베누아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그의 가족이 지닌 고유한 문화를 어떤 면에서 완전히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게 우리를 닮은 듯 다르게 만들었죠. 저희 둘의 집만 봐도 차이를 느낄 수 있을거예요.

베누아는 당신과 시간 함께 일해오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보완해주는 관계라고 말하더군요.
그 점은 저 또한 동의해요. 중요한 시안에서는 대개 의견이 맞는 편이죠. 디자인에서는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고요. 우리가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어요.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저도, 베누아도 아니고 우리 둘이 만들어낸, 매우 강렬한 개성을 지닌 제3의 인물이라고요. 그 인물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우리 둘이 함께 해야 할 과제나 훈련인 셈입니다. 집 벽에 걸린 그림은 제가 그린 것이기 때문에 100% 저의 취향이지만,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은 둘이 함께 결정한 아스티에 드 빌라트라는 인물의 취향이죠.

아스티에 빌라트 소개 글을 보면 “1996, 이반과 베누아, 그리고 친구와 가족이 처음 설립했다라고 쓰여 있어요. 창립 당시 애콜   보자르에 다니던 학생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사업에 뛰어들게 됐나요?
그때 저는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좋았어요. 전시도 꽤 하고, 작품이 잘 팔리기도 했죠. 자신감이 좀 없다는 게 문제였어요. 미술 시장에 저를 내놓고 남에게 제 작업 이야기를 하는 게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어요. 마치 발가벗고 서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좋은 말을 들으면 부끄럽고, 비평을 들으면 상처가 컸습니다. 그래서 갤러리에서 전시하자고 전화를 걸어와도 일부러 피했어요. 그림 그리는 건 좋지만, 화가가 되긴 힘들겠구나 생각하던 차에 베누아의 형제자매가 아스티에 드 빌라트 프로젝트 얘기를 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사실 처음엔 부업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주 큰 착각이었죠. 에콜 데 보자르에 다닌 마지막 2년은 매일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가구를 만들고, 오후 1시부터는 학교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모두 작품 이야기만 하는데, 저는 회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더라고요. 게다가 1996년 당시엔 아무도 갖고 있지 않던 휴대폰까지 사용했어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Silvio Berlusconi 전 이탈리아 총리 같은 상스러운 사람이나 가지고 다니던 물건을 말지요.(웃음) 결국 모두 제가 회사를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저를 이상하게 봤습니다.

언급한 것처럼 아스티에 빌라트의 출발은 가구를 중심으로 하는 회사인데, 가구에서 세라믹으로 방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가구와 세라믹을 함께 만들었어요. 처음엔 가구가 더 유명하고, 훨씬 잘 팔렸죠. 저희는 단단한 수종의 목재를 고집해 가구를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가구가 환경에 따라 갈라지거나 변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그런 변화를 좋아했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고객이 많았죠. 배송 문제도 복잡했고요. 그래서 점차 세라믹 비중을 훨씬 더 높이게 됐습니다. 이젠 한동안 중단했던 가구 제작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에요. 서울 매장에서도 가구를 판매할 계획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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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뷰에서 당신이아스티에 빌라트는 경제 논리와 관계없이 시작했다라고 대답한 것을 일이 있는데, 어떤 뜻으로 이야기인가요? 그럼에도 비즈니스를 논리적으로 이끌어갈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사실 처음엔 시작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둘 거라고 착각했어요. 생제르맹 Saint Germain에 있는 조그마한 부티크 진열대에 놓은 제품이 잘 팔리고, <마리 클레르 메종 Marie Claire Maison> 잡지에 제품이 소개되니 그림밖에 모르던 스물다섯 살짜리 대학생은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참여한 메종 & 오브제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요. 저희 부스 앞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제품을 사려고 줄을 설 정도였지요. 그 후 1년 동안 온갖 잡지에서 우리 제품을 다루었고요. 이 말은 곧 제 답변처럼 우리가 경제성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변한 건 없어요.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죠. ‘비즈니스’,’논리라는 단어 자체가 제겐 아직도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아스티에 빌라트의 세라믹은 디자인이 같은 식기라도 도자공이 모든 제품을 손으로 빚기 때문에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것이 특징입니다. 현대적 기준에선 크기, 모양, 무게 등을 균일하게 하는 것을 완벽함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스티에 빌라트가 추구하는완벽함이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에겐 투박한 표면이나 형태가 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즉 진정성을 의미하거든요. 한 사람이 한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완성하기 때문에 제품 바닥에 브랜드 명과 나란히 만든 이의 이름을 각인합니다.

사람들이 아스티에 빌라트에 열광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 얘기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아스티에 드 빌라트를 통해 잊고 있던 자기만의 역사와 이야기를 되찾는 거죠. 아시아에선 조금 다른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 손으로 정성 들여 만든 것의 가치를 높이 산다고 느꼈거든요. 결국 눈에 띄는 확실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스티에 드 빌라트를 꾸준히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지 않거든요.

하나의 사업체이기도 아스티에 빌라트를 운영하는 있어 절대로 타협할 없는 원칙, 혹은 지키고자 하는 초심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품의 질, 자연스러움, 그리고 과거의 잊힌 장식 문화를 현대에 접목하는 것이죠. 제품에서 재료, 소재 특유의 생기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고요. 물론 이런 일련의 원칙이나 기준을 도식화한 건 아니에요.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죠. 아스티에 드 빌라트에서 럭셔리라는 개념 또한 빼놓을 수 없어요. 단순히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 잘 만든, 제작자의 영혼이 담긴 제품만이 지닐 수 있는 력셔리요. 추구해서 만드는 럭셔리가 아닌, 작업 결과로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럭셔리인 것이죠.

앞으로 브랜드가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영역이나 프로젝트가 있나요?
더 많은 걸 직접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는 세라믹 반죽에 쓰는 흙도 직접 만들고 싶고요. 하지만미래에 뭘 하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천천히 해왔거든요. 모든 건 순리대로 흘러가요/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끝이 없는 페인팅 작업 같은 거예요. 계속해 덧칠하면서 완성해나가는 거죠. 거듭 이야기하지만,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저와 베누아, 그리고 협업하는 아티스트들이 함께 키워나하는 소설 속 인물과도 같은 존재예요. 박물관에 박제된 조각상이 아니라 하루하루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생동하며 모험하는 인물인 거죠. 그 모험은 제품이 될 수도 있고, 장소가 될 수도 있는 거고요. 너무 많은 분야의 기술이 잊혀가고 있어요. 샤넬 Chanel이나 에르메스 Hermès처럼 조직적으로, 그리고 큰 스케일로 보존 사업을 펼칠 수는 없어요.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옛것을 살려내고, 오늘날에 맞는 방향을 제시하고 싶어요. 불교 사상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모든 현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존재가 소멸하면서 또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며 누구도 이런 섭리를 피해 살 수 없다는 거예요. 그 자연의 이치를 고찰하면서 무언가 의미 밌는 것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반 페리콜리의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B>  '아스티에 드 빌라트' 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enoît Astier de Villatte

Alexander Schärer

Astier de Villatte
Issue No. 85

Astier de Villa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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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1996년 파리에서 이반 페리콜리와 베누아 아스티에 드 빌라트가 가구와 세라믹으로 시작해 향초, 인센스, 문구류 등의 제품을 선보이며 브랜드만의 독창적 스타일을 창조해 왔습니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를 상징하는 화이트 세라믹은 숙련된 도자공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 마치 예술품과도 같은 가치를 인정받는가 하면, 특정 도시나 지역에 대한 감성을 담은 향 제품 역시 후각으로 여행을 떠난 듯한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며 상징적 제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더불어 파리의 유서 깊은 라이노타이프 인쇄소를 인수해 출판물을 제작하는 등 잊힌 과거를 재조명해 삶에 필요한 기능적이면서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