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토이는 1972년 호주에서 미취학 어린이를 위한 교육용 완구 브랜드로 출발했다. 필리핀에서 제2의 사업을 일군 창립자 한스 액슬렘은
시장에 없던 아이템인 실제 동물에 근접한 디자인의 봉제 인형으로
포화 상태의 완구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아동용 교육 완구로 시작한 한사토이
한사토이를 창립한 한스 액슬렘은 열 살 무렵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하면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호주에서 보냈다. 처음 시작한 일은 미국계 장난감 회사인 아이디얼 토이 Ideal Toy Corporation의 영업 사원이었다. 당시 경험은 훗날 액슬렘이 기업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그는 거품이 많은 제품 거래 방식에 의문을 품었다. 광고 비용, 생산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은 데다 도매업자의 마진까지 붙어 실제 소비자가격이 지나치게 비쌌던 것이다. 게다가 도매로 팔려나가는 제품 수도 형편없이 적어 회사 수익은 저조했다. 액슬렘은 회사에 도매상을 거치지 말고 소매업자와 직접 거래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시험했다. 이 모델은 결국 대성공을 거둬 아이디얼의 미국 본사에서도 이 시스템을 도입해갔다. 중간 유통을 없앤 직선적 거래 원칙은 현재의 한사토이에도 약간의 형태만 바꿔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아이디얼 토이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기존 상식을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진 액슬렘은 자신감을 얻었고,  약 6년 뒤인 1972년 회사에서 독립해 자신의 첫 사업인 한사토이  코퍼레이션 Hansa Toy Corporation을 시작한다. 그가 알아낸 가장 가능성 있는 틈새시장은 유치원과 학교였다. 어린이를 위한 교육용 보조 재료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액슬렘은 공장을 임대하고 새로운 제품도 추가했다. 당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스케이트보드도 만들었다. 스케이트보드는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아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트렌디한 인기 상품을 만든 덕에 재정 면에서 크게 성장했지만, 액슬렘이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교육용 완구 시장이었다. 액슬렘은 스케이트보드로 번 수익을 다시 교육용 상품을 개발하는 데 쏟아 부었다. 슬로건은 ‘배움이 있는 한사토이 Hansa Toys that Teach’였다. 기존에 없던 제품을 선보여 성공한 한사토이는 명실공히 호주 최대의 완구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기업가 정신이 만들어낸 두 번째 기회
한사토이는 순조롭게 성장해갔다. 목재 완구와 플라스틱 완구 제조 회사뿐 아니라 24시간 가동하며 패키지와 카탈로그를 찍어내는 인쇄 회사, 공구 제조사, 인젝션 몰딩 공장도 소유했다. 수량과 품질 모두 직접 관리하는 자급자족 형태의 그룹이 된 것이다. 그러던 1988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봉제 인형 회사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던 한 친구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당시 친구의 회사는 1000명이 넘는 직원에게 월급도 주지 못 할 만큼 큰 손해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컨설턴트 입장에서 조언해주기를 바랐어요.” 처음 약속한 2주는 3주가 되었고,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사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저는 슬슬 은퇴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마닐라의 회사에서 고문 역으로 친구를 도우면서 호주에 있는 시설은 인쇄 회사부터 시작해 하나씩 정리하는 중이었죠. 다만 만일을 대비해 봉제인형부문에서는 제가 한사라는 이름을 계속 쓸  수 있도록 하는 계약 조건을 남겨두었습니다.” 호주 한사토이는 1993년 최종적으로 모두 매각되었는데, 당시 이를 인수한 회사는 생산지를 중국으로 돌려 더 싼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려고 시도하다 2년이 채 안 되어 시장 점유율을 잃고 말았다. 한사라는 이름도 시장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당시 회사와 결별하고 잠시 쉬고있던 액슬렘에게 문 닫은 봉제 공장 직원들의 사절단이 찾아왔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도, 아이들을 먹여 살릴 길도 없어져버린 겁니다. 제발 다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그 부탁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어요.” 액슬렘은 그들의 청을 받아들였다. 마닐라 공장의 기계 일부를 사들여 지금의 한사토이가 위치한 클락 필드에 작은 부지를 마련하고, 자신을 찾아온 직원 60여 명과 함께 공장문을 새로 열었다.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려던 계획은 액슬렘은 호주 시절 한사토이를 일으킨 경험을 되살려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한사토이는 순조롭게 성장해갔다. 목재 완구와 플라스틱 완구 제조 회사뿐 아니라 24시간 가동하며 패키지와 카탈로그를 찍어내는
인쇄 회사, 공구 제조사, 인젝션 몰딩 공장도 소유했다. 수량과 품질 모두 직접 관리하는 자급자족 형태의 그룹이 된 것이다.

한사

필리핀에서 일으킨 제2의 한사토이 브랜드
액슬렘을 찾아온 직원들은 이미 오랜 세월 캐릭터 인형을 만들어온 봉제 인형 전문가였다. 또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세밀한 작업에 능한 기술자들이기도 했다. 첫해에 액슬렘은 봉제 인형 시장을 다시 조사하는 데 모든 것을 투자했다. 액슬렘은 워커 왜건을 만들던 당시처럼 봉제 인형 분야에서도 그동안 제대로 시선을 끌지 못한 틈새시장을 찾아냈다. 바로 실물형 인형이다. 세계 곳곳의 동물원,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의 자연을 다루는 매체, 세계야생동물기금(WWF) 같은 단체는 사실적이면서도 상업적 매력을 겸비한 동물 인형을 갈구하고 있었지만 이를 공급하는 곳이 없었다. 캐릭터 인형의 틈바구니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상품군이었던 것이다. 액슬렘은 폐업한 마닐라 공장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헤르난도 나바레트를 직접 찾아가 한사토이로 영입했다. 봉제 인형 치고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지만 상업성은 충분히 빠르게 입증되었다. 호주 소비자들의 뇌리에 여전히 견고하게 남아 있던 ‘한사’라는 브랜드 이름 덕분이기도 했다. 초창기에 거래를 시작한 동물원은 오래지 않아 컨테이너 단위로 연간 5~6대씩 주문하는 중요한 고객이 되었다. 가파른 증가세는 한사가 수집용 아이템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틈새시장을 정확하게 공략한 한사토이는 점점 더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만들어나갔다. 재고를 보유하지 않고 그때그때 주문받은 분량만 제작하지만 이미 주문량을 따라가기 벅찰 정도라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고 싶어 하는 업체들의 요구도 당분간 거절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브라질을 비롯한 거대 신흥 시장들이 부쩍 한사토이에 큰 관심을 보이고있다.

강력한 브랜드 구축 통한 파트너십 보호
매년 1400만 달러 규모의 매출을 거두는 회사지만, 한사토이는 직영 매장을 한 곳도 운영하지 않는다. 본사에서는 오직 디자인과 제조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세계 36개국에 한사토이의 인형을 유통하는 24개  주요 수입업체와 소규모 딜러가 책임진다. 제품 자체에 대한 브랜딩과 각국 시장에서의 브랜딩이 분리된 것이다. 한사토이는 한 나라에 하나 이상의 수입업체를 두지 않고 그들 각자와 견고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제품은 모든 업체에 동일한 가격으로 공급하며, 각국 시장에서의 마케팅이나 브랜딩은 해당 시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수입업체에 일임한다. 한사토이의 수입업체는 판매나 가격경쟁에서 자유롭고, 그만큼의 여유를 자국 소비자가 원하는 신제품 아이디어를 한사로 피드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한사토이는 이를 통해 실패 확률이 적은 신제품을 내놓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한편, 한스 액슬렘은 독일의 슈타이프를 비롯한 세계 굴지의 완구 회사가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는 매각 요청을 모두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있다. 한사를 독립 브랜드로 지켜가고 싶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여전히 열정적으로 브랜드를 키워가고 있는 창립자 액슬렘과 한사가 품은 가능성은 어떤 완구 브랜드보다 무한해 보인다.

John C Jay

Jason Holley

Hansa Toys
Issue No. 26

Hansa T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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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과 가장 흡사한 동물 인형을 만드는 한사토이는 1972년부터 호주에서 교육용 완구 회사를 운영하던 한스 액슬렘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1994년 필리핀에 새롭게 둥지를 틀고 섬세한 예술 감각과 표현력으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해온 한사토이는 현재 어린이용 장난감 이상의 쓰임새를 지닌 견고한 품질의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로 다양한 공간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