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버른에서 소형 라디오 제조사로 시작한 브레빌은 1974년 출시한 샌드위치 토스터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주방 가전 브랜드 영역으로 진출했다. 이후 상공간에서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의 디자인과 기능을 가정용 제품에 적용해 주방 가전의 질을 높였고, 에스프레소 머신과 주서 등의 개발에 세계적 바리스타와 셰프를 참여시키면서 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소형 라디오 제조사의 변신
브레빌이라는 브랜드의 시작은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디오 세일즈맨이던 빌 오브라이언 Bill O’Brien과 엔지니어이던 해리 노빌 Harry Norville은 라디오 제조 회사 브레빌을 설립했다. 80여 년 후 혁신적 소형 가전제품을 총망라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브레빌의 시작은 이처럼 두 남자가 합심해 만든 작은 라디오 회사였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 배경의 영향으로 라디오에 이어 지뢰 탐지기도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하자 브레빌은 자연스레 라디오에서 다른 소형 가전제품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1960년에 그들은 헬스와 뷰티 케어 기기 시장이 서서히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50여 종의 헬스·뷰티 기기를 개발해냈다. 헬스·뷰티 케어 기기로 시장에서 탄탄한 자리를 선점한 브레빌이 주방 가전제품군으로 전환한 계기는 1974년 브레빌 샌드위치 토스터 Breville Sandwich Toaster라는 제품을 출시하면서다. 빵을 압축해 바삭하게 굽는 기능을 갖춘 스테인리스스틸 제품으로, 출시한 첫해 호주에서 40만 개를 판매했고, 호주 본토뿐 아니라 뉴질랜드와 영국에서까지 대성공을 거두었다. 1974년에 탄생한 브레빌의 샌드위치 메이커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가 재해석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스테디셀링 제품이며, 브레빌은 이를 통해 토스터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 1978년에 출시한 브레빌 키친 위즈 Breville’s Kitchen Wizz는 음식의 가공 처리를 편리하게 만들어준 제품이다. 브레빌은 요구르트 메이커, 블렌더, 와플메이커 등 다양한 주방 기기를 연달아 출시했다.

남성 소비자에게도 어필한 디자인 혁신
오브라이언 가문의 사람들은 3대에 걸쳐 브레빌 사업을 발전시켜나갔다. 설립자 빌 오브라이언의 아들 존 오브라이언은 1968년 브레빌 연구 개발 센터 (Breville Research and Development Centre)를 설립해 2003년 사망하기 전까지 많은 제품의 개발을 열정적으로 이끌었고, 존 오브라이언의 딸 바버라 오브라이언 Barbara O’Brien은 1990년대에 마케팅 부서를 운영하기도 했다. 한 명의 디자이너와 한 명의 엔지니어로 시작한 브레빌 연구 개발 센터는 오늘날 호주에서 가장 혁신적인 산업디자인 센터로 꼽힌다. 정형화된 가전제품에서 벗어나 독창적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시스템을 1960 년대부터 이미 구축해온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브레빌은 고성능 주방 가전 브랜드로서 전 세계적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에 진출했고, 현재는 한국·중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권과 터키·브라질 등 40여 개 이상의 국가에서 판매하고 있다. 일반 주방 가전 브랜드는 식문화가 확연히 다른 국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현지화한 제품을 내놓는 데 비해 브레빌은 각 시장에 특화해 디자인이나 기능을 바꾸는 대신 각 국가에 맞게 제품 라인업을 선정하는 전략을 취한다. 브레빌의 제품 라인업은 다른 주방 가전 브랜드에 비해 사용자 폭이 넓은 편이다. 가정주부뿐 아니라 젊은 독신자, 특히 남성 사용자의 비중이 높다. 주부의 전유물처럼 여기던 주방 가전제품이 남성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디자인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주방 가전계의 애플’이라 불리기도 하는 브레빌은 뛰어난 기술력과 더불어 심플하며 세련된 디자인으로 승부한다. 백색 가전 일색이던 주방 풍경을 바꾸는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물성은 내구성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기계 마니아의 소장욕을 자극한다. 브레빌에 현대적 미감을 불러온 것은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 일컫는 키스 헨젤 Keith Hensel의 공이 크다. 2002년 브레빌에 합류한 그는 2013년 눈을 감기 전까지 단순한 주방 기구를 넘어 하나의 작품으로 브레빌 제품을 탈바꿈시켰다. 아름다운 디자인뿐 아니라 실용적 기능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만든 것 또한 그의 재능이었다. 브레빌의 토스터 라인에 ‘a bit more’ 버튼을 추가해 위트와 실용성을 더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모두가 의식하지는 못해도 실제로 불편함을 느끼던 부분에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정서적 만족감까지 선사한 것이다. 몇몇 제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소통을 통한 혁신을 추구한 결과 브레빌은 레드닷, iF 디자인 어워드 등 60여 개의 디자인상과 200여 개의 특허권을 보유한 브랜드가 되었다.

브레빌 제품은 가정용 주방 가전의 질을 전체적으로 상향 조정하며 가전 브랜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브레빌이 본격적으로 주방 가전 영역에 진출하는 공신이 된 샌드위치 메이커의 레시피 북, 1974년.
브레빌이 본격적으로 주방 가전 영역에 진출하는 공신이 된 샌드위치 메이커의 레시피 북, 1974년.

웰빙 문화 이끄는 가전 브랜드
1990년대에 들어서며 건강한 음식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자, 브레빌 역시 건강한 삶을 위한 제품을 연이어 개발했다. 과일을 통째로 갈아 주스로 만드는 주스 착즙기 ‘Juice Fountain’이 대표 제품이다. 이 제품은 카페 문화 성장이라는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4만 대 이상 판매되는 성과를 이뤘다. 브레빌 제품은 가정용 주방 가전의 질을 전체적으로 상향 조정하며 가전 브랜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리스타, 셰프 등 전문가가 사용해도 무방한 품질을 갖춘 제품을 보급함으로써 상업용 제품의 기능을 가정용 제품에 이식한 셈이다. 2004년 브레빌은 혁신 기술과 전문가 급 기능을 탑재한 마이크로프로페셔널 라인을 출시했다. 대표 제품인 브레빌 800 클래스 에스프레소 머신의 인기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커피 맛을 알고, 집에서도 최고급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하는 인구가 급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브레빌은 합리적 사치 (affordable luxury)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차 종류에 맞춰 온도 조절이 가능한 티 메이커, 추출하고자 하는 원두에 맞게 분쇄도를 85단계까지 조절할 수 있는 그라인더 등 섬세하고 전문적인 기능을 탑재한 제품들은 고급 취향을 가진 현대의 소비자에게 만족감을 준다. 브레빌은 전문가가 인정한 제품, 식문화를 만들어가는 기업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바리스타나 유명 셰프를 자문 위원과 홍보 대사로 두고 있다. 지금 브레빌은 ‘We are food thinkers’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벤트와 캠페인을 펼쳐나가고 있다. 전 세계의 브레빌 홈페이지에서는 브레빌 제품으로 응용할 수 있는 다양한 레시피와 쿠킹 팁을 제공하고,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셰프와 바리스타의 레시피를 공유하며 창의적 방식의 요리법과 새로운 음식을 통해 일상의 영감을 얻으라고 설득한다. 동시에 브레빌 제품이 단순한 주방 도구가 아닌, 식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창의적 파트너임을 피력한다. 또 브레빌은 최근 주방 가전계에 불고 있는 혁신 열풍의 선두에 서서 이를 주도하고 있다. 브레빌 그룹은 새로운 CEO로 미국의 소비자 테크놀로지 전문가 짐 클레이턴 Jim Clayton을 영입하며 혁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더불어 1956년부터 샌드위치 메이커나 주전자 등 작은 주방 가전을 생산해온 회사의 차후 성장 동력은 사물 인터넷, 즉 와이파이와 연결된 주방 기기에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브레빌의 소비자는 머지않아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작동하는 커피 메이커와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다운받는 믹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Saehoon Park

Caffe Themsel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