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서재우
사진
신동훈

Ted Yoo

유상호
CED 인터내셔널 대표
유

10여 년간 모스콧을 비롯해 다양한 아이웨어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해온 유상호 대표는 모스콧이 안경 프레임을 사이즈별로 제작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안경원으로 시작된 역사 때문이라며, 구매하는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한 후 안경을 제작했기에 경제 대공황 속에서도 빈티지 안경의 대명사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2007년 CED 인터내셔널을 설립, 해외 유수의 아이웨어 브랜드를 국내에 수입·유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당시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시장은 미개척지나 다름없었는데요. CED 인터내셔널을 시작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당시 한국 아이웨어 시장의 초점은 럭셔리 하이패션 브랜드였습니다. 안경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패션으로 안경을 소비하던 초기 시장 단계였어요. 안경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안경의 패셔너블한 측면보다는 고유성에 집중하는 아이웨어 브랜드를 소개하고 싶은 갈증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작 기술이 굉장히 발전했음에도 OEM제조 방식에 머물러 있는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안경을 국내에 소개하고, 동시에 국내 기술로 우수한 안경을 제작하고 싶은 열망을 담아 CED(Create Eyewear Distribution) 인터내셔널을 설립했습니다.

유통하는 여타 해외 브랜드와는 모스콧의 성격이 다른 것도 같습니다.
저희가 처음 국내에 소개한 아이웨어 브랜드가 르노인데, 1960년대 안경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클래식하게 선보이는 방식이 제가 생각하는 좋은 안경의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한 브랜드였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스티브 잡스 Steve Jobs가 쓴 안경으로 알려지면서 대중에게 친숙한 이름이 됐지만, 2007년만 해도 높은 가격 때문에 대중에게 소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안경 하나에 60~100만 원을 투자할 사람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안경의 품질은 뛰어났지만, 대중에게 전달되기엔 무리였던 거죠. 그래서 좀 더 편안히 접근할 수 있게 선택한 브랜드가 모스콧입니다.

2010년이면 모스콧이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전입니다. 1915년에 설립한 브랜드가 그때까지 해외 매장을 한 곳도 내지 않은 건, 분명 그만큼 까다로운 기준 때문일 것 같은데요. 그들을 어떻게 설득했나요?
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지만, 당시 모스콧의 글로벌 마켓을 담당했던 케니 모스콧 Kenny Moscot은 매번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말했고, 브랜드를 통해 가족을 바라봤습니다. 모스콧이 해외 진출에 소극적이었던 건, 브랜드 자체가 가족의 역사이기 때문에 다른 업체에 쉽게 위탁할 수 없었던 이유가 컸죠. 그래서 저 또한 그들을 안심시킬 무기가 필요했습니다. 케니를 만난 날 하루만 더 시간을 내다랄고 한 후에 호텔에서 밤새워 ‘모스콧 서울 진출 계획’을 파워포인트로 작성해 발표했습니다. 결국, 케니의 마음을 움직였죠.

2

모스콧의 디스트리뷰터로 시작해 모스콧의 독립 매장을 오픈하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꼭 매장을 열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매장이 필요해진 거죠. 2010년부터 3년 동안 모스콧을 국내에 유통해보니 모스콧 마니아가 생기더라고요. 그들에게 제대로 된 모스콧 문화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케니가 죽은 후, 그의 형이자 검안의(Optometrist: 사람들의 눈 상태를 점검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처방해주는 전문의) 하비 모스콧의 반대가 있었거든요. 그는 자신들의 패밀리 네임 간판이 서울 한복판에 걸리는 걸 부담스러워했어요. 하지만 제 의지가 하비의 우려를 잠재울 만큼 강건했고, 그 결과 2013년 3월 모스콧 서울 독립 매장을 오픈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서울 매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도쿄와 런던, 그리고 로마에 모스콧 독립 매장을 열더군요.(웃음)

대표님이 모스콧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애정과 객관적인 시선이 공존할 것 같은데요. 현재 글로벌 아이웨어 시장에서 모스콧의 입지는 어떤가요?
아이웨어 브랜드를 평가하는 기준은 꽤 다양합니다. 빈티지 스타일과 아세테이트 안경 프레임을 기준으로 한다면, 모스콧은 전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단, 메탈 안경 프레임으로 모스콧의 입지를 평가하면, 아직은 정상급에 도전하고 있는 브랜드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3년의 역사를 빼놓고 모스콧을 얘기할 수 없는데, 안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모스콧이 꾸준히 경영 철학을 유지하며 성장할 수 있던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모스콧의 시작점이 안경원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기자님도 안경을 쓰고 있으니 알 테지만, 안경 프레임을 마치 의류처럼 사이즈별로 출시하는 안경 브랜드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모스콧은 안경에 ‘스몰’, ‘미디엄’, ‘라지’라는 사이즈를 적용했어요. 이건 그들이 안경을 스타일로 접근한느 제조 회사에서 출발한 게 아닌, 소비자와 접점을 찾고자 하는 입장이었기에 가능한 발상입니다. 안경을 잘 만들기 이전에 고객에게 어떤 불평과 요구가 있는지 잘 알고 있던 것이지요. 모스콧은 고객이 자신의 얼굴형에 근사하게 잘 맞는 안경을 원한다는 걸 정확히 캐치해 안경에 사이즈 개념을 도입, 모두에게 잘 맞는 안경을 디자인한 거예요.또 다른 강점은 질문에서 언급했듯이 모스콧의 역사입니다. 현재 모스콧은 4세대 하비 모스콧이 운영하고, 그의 아들인 잭 모스콧 Zack Moscot이 안경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4대와 5대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근무하는 셈이죠. 아버지는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전달하고, 아들은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해요. 100년 이상의 역사가 흘렀지만 여전히 쿨하고 세련된 안경으로 읽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전통과 현재를 잘 융합하는 덕분입니다.

 

유상호 대표의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B>  ’모스콧' 이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Myeonghan Kim

Eddie Roschi

Moscot
Issue No. 64

Moscot

구매하기
앤디 워홀과 트루먼 커포티, 조니 뎁이 즐겨 쓴 안경으로 유명한 모스콧의 역사는 1915년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시작합니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절 단종된 과거의 안경을 복각하며 성장 기틀을 마련해 100년 넘게 역사를 이어 온 모스콧은 흰색 면 티셔츠, 청바지, 윙팁 구두와 같은 아메리칸 클래식의 기본 아이템이자 가장 상징적인 빈티지 아이웨어 브랜드로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습니다.
err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