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356을 출시한 이후 특유의 공학적 기술과 브랜드 가치를 이어온 포르쉐는 1990년대의 경영 위기를 효율적으로 극복하고 SUV 시장 진출에 성공하며 지금까지도 스포츠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최초의 모델로부터 이어져 온 일관성
2018년은 최초의 포르쉐라고 일컬어지는 356이 탄생한 지 70년을 맞은 해다. 포르쉐는 빠르고 날렵하고 특징적인 생김새를 가진 자동차를 만들어왔다. 실력에 의지해 살아남았고, 수많은 위기를 극복했다. 스스로의 능력과 힘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세워왔다. 그리고 기사 제목처럼 ‘달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기준점 같은 차를 줄곧 만들어 한결같이 사랑받았다.
포르쉐에는 집요할 정도의 일관성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포르쉐만이 추구하는 스포츠카의 정체성이다. 첫 포르쉐인 356에도 그 요소가 들어 있다. 엔진이 뒤에 실린 구조다. 아울러 포르쉐는 그때부터 고급차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포르쉐의 전설(Die Porsche- Saga)›을 쓴 슈테판 아우스트 Stefan Aust는 이렇게 묘사했다. “작고 가벼운 스포츠카에 대한 꿈, 누구나 다 가질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 성장하는 구매자들은 이 작고 가벼운 스포츠카를 구입할 수 있었다. 1950년대 설계 경험을 바탕으로 포르쉐 교수는 이제 새로운 창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었다. [···] 이 빠른 여행용 자동차는 우리 시대의 완벽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포르쉐가 단순한 자동차를 넘어, 성공한 사람이 꿈을 이루었다는 증표가 된 것이다. 포르쉐는 시간이 지나도, 심지어 반대편 대륙에서도 꿈의 상징이다. 포르쉐는 차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알리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포르쉐는 자동차 경주를 대중과 연결했다. 포르쉐 브랜드와 포르쉐 오너 클럽을 연결하기도 하고, 세계 각지의 VIP를 포섭해서 관리하기도 했다. 장수한 만큼 모델이 오래될수록 한계도 명확해졌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자동차가 필요했다.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스포츠카의 탄생
페리 포르쉐는 그때부터 자동차에 모순적인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운동성능이 향상되면 소리가 커지고 공간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페리 포르쉐는 성능과 쾌적함을 동시에 요구했다. 그 기조를 바탕으로 나온 356의 후속 모델이 바로 911이다.
911을 빼고 포르쉐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911은 포르쉐의 역사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사전 기준 중 한 가지는 처음부터 있었다. 누구나 자동차의 실루엣을 보고 포르쉐라고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후미 부분을 경사지게 디자인했다”라는 페리 포르쉐의 말처럼 포르쉐는 자신들이 어떤 특징을 유지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짜릿해야 하고, 편안해야 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포르쉐임을 확연히 드러내도록 남다르게 생겨야 하는데, 거기에는 공학적인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 결과 356보다 한층 커다란 자동차를 기획한 것이 911의 생산 배경이었다. 911을 이끈 건 페리 포르쉐의 아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부치” 포르쉐다. 이때까지만 해도 포르쉐는 가족 기업이었다. 포르쉐 창업주인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1930년대 포르쉐를 설립했다. 이후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가 356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었다. 페리는 아들에게 자기 할아버지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포르쉐 3세는 ‘부치’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부치는 자동차 및 제품 디자이너가 되었다. 부치는 현재 911의 형태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 부치가 했다는 말인 “더 스포티하게, 덜 편안하게”가 아직도 전해 내려온다. 포르쉐 911은 그 이후 컬트적인 차량이 되었다. 레이스에서 벌인 엄청난 활약으로 고성능 차의 대명사가 되었다. 특유의 남다른
디자인과 비싼 가격 때문에 고급품과 성공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포르쉐는 지금까지도 911의 상징성을 자사의
모든 차로 이어가고 있다. 911에도 영광스러운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었다. 포르쉐는 한때 고장률이 높았다. 1980년대에는 고객에게 인도되는 차량에 조수석이 붙어 있지 않을 정도로 조립 품질이 떨어지던 때도 있었다. 혼란이 이어져 911은 한때 단종 직전까지 갔다. 대책이 필요했다.

페리 포르쉐는 성능과 쾌적함을 동시에 요구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능과 쾌적함 사이에서 최적의 밸런스를 요구했다. 거기에 더해 디자인도 아름다워야 했다. 페리 포르쉐는 이러한 요구를 1985년 한마디로 정리한다. “우리의 변함없는 철학은 기능과 아름다움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포르쉐 박물관 문서 수장고에서 보관하는 포스터들. 광고, 레이스 등 주제별로 포스터를 보관해 둔다.
포르쉐 박물관 문서 수장고에서 보관하는 포스터들. 광고, 레이스 등 주제별로 포스터를 보관해 둔다.

위기의 스포츠카를 구원한 SUV

1992년부터 2009년까지 포르쉐의 CEO로 재직한 벤델린 비데킹 Wendelin Wiedeking은 위기의 포르쉐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외부 경영인이라는 신분으로 포르쉐에 들어가 포르쉐의 경영 실적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럭셔리 자동차업계의 문법 자체를 바꿨다. 그는 포르쉐의 경영을 정상화하고 포르쉐를 양적, 질적으로 급이 다른 브랜드로 만들었다. 비데킹은 적극적으로 타국의 인사 모델과 생산 모델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고 불량률이 줄었다. 브랜딩 면에서 비데킹은 라인업을 정리하고 신차를 개발했다. 비데킹 시절에 포르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대형 쿠페 등의 라인업을 정리하고 911과 다른 신차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더해 비데킹은 공랭 엔진이던 911의 신형을 수랭식 엔진으로 교체했다 예전의 911을 기억하던 사람에게는 반감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비데킹은 나중에 봤을 때 전략적으로 적합한 판단을 내렸다. 비데킹 재임 중의 포르쉐가 내렸던 최고의 전략적 판단은 SUV 카이엔을 출시한 일이었다. 카이엔은 개발과 출시 단계에서 굉장한 비난에 직면했다. 스포츠카 전문 회사가 SUV를 만드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포르쉐 애호가는 부정할지 몰라도 카이엔은 지금 포르쉐에서 가장 중요한 차다. 우선 포르쉐는 카이엔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북미를 기준 삼으면 포르쉐와 마칸의 합산 판매량은 포르쉐 전체 판매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Bloomberg Businessweek›가 언급한 ‘북미의 포르쉐는 SUV 회사’라는 평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카이엔은 럭셔리 자동차업계의 근간 자체를 뒤흔들었다. 스포츠카 브랜드의 SUV 제작은 금기였다. 포르쉐 카이엔은 이 고정관념에 대한 살아 있는 반례였다.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해도 매출뿐 아니라 명예까지 거머쥘 수 있다는 걸 카이엔이 증명했다.

전통과 성능, 매력의 원천

“포르쉐 자동차는 소비 엘리트층한테는 최신 감각이 넘치는 액세서리가 되었고, 취미 레이싱 드라이버에게는 즐길 수 있는 자동차로 각광받았다.” 이는 ‹포르쉐의 전설›에서 1950년대 포르쉐를 소개하면서 나온 말이다. 최초의 포르쉐인 356이 나온 지 70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이 말은 놀라울 정도로 동일하게 유효하다. 여전히 포르쉐는 부자의 장난감이자 누군가의 꿈이며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다. “포르쉐는 스스로가 어디에서 왔는지 절대 잊지 않아요.” 취재차 찾은 포르쉐 뮤지엄의 사서 사라 펠터스 Sarah Pelters는 이렇게 말했다. 포르쉐 박물관에 가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 수 있다. 포르쉐 박물관 2층의 도서관에서는 포르쉐를 소개한 세계 각국의 잡지 기사를 시작으로 온갖 자료를 모두 보관한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스포츠카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역사가 포르쉐 브랜드의 중추에 자리한다.
물론 포르쉐에도 숙제가 있다. 지금은 자동차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하는 시기다. 하지만 포르쉐는 중요한 순간마다 가장 멋진 차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열광을 이끌어냈다. 포르쉐는 앞으로도 좋은 자동차를 원하는 사람들의 꿈이 될 것이다. 늘 답을 찾아낼 것이다. 70년 동안 그래 왔으니.

Maison Kitsuné

DJI

Porsche
Issue No. 70

Porsche

구매하기
포르쉐는 1948년 첫 스포츠카인 356 모델을 선보인 이래 브랜드의 DNA를 가장 잘 응축한 모델인 911의 상징성을 흔들림 없이 지켜왔으며, 동시에 SUV 카이엔과 대형 세단 파나메라, 컴팩트 SUV 마칸을 연달아 성공시킴으로써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또한 자동차 공학과 디자인, 고객 관리와 스토리텔링이라는 브랜딩의 모든 영역을 원숙하게 조절하며 21세기의 럭셔리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rr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