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 유통업체 세이유 산하 프로젝트로 기획된 무인양품은 ‘무인(無印: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과 ‘양품(良品: 좋은 품질)’이라는 이름에 브랜드 철학을 담아 1980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최초 40여 종을 선보인 이래 현재 7000여 품목을 취급하는 무인양품은 주택사업으로 관심을 넓히는 등 브랜드가 생활의 미의식을 판매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위기로부터 시작된 기회
1970년대 말의 일본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1950년대 이후 유류 파동을 겪으며 지금껏 단 한번도 꺾이지 않았던 기세가 처음으로 불안한 조짐을 보인 것이다. 정부는 발벗고 나서서 국민들의 절약 정신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물자 공급과 경제 상황에 불안감을 느낀 일본인들의 소비 행태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일본 내 프라이빗 브랜드(유통업체가 자사 점포에만 출시하는 상품)의 활성화는 이런 상황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특히 대형 마트들이 변화를 견인했다. 당시 다이에, 쟈스코, 이토요카도 등이 앞다퉈 프라이빗 브랜드 상품을 선보이며 지금껏 소매업의 주역이었던 백화점의 아성을 위협했다. 훗날 무인양품의 모체가 된 할인 유통업체 세이유는 다소 늦게 대열에 합류했다. 어느 시장에서나 후발 주자는 차별화를 고심하기 마련이다. 세이유는 동시대에 프라이빗 브랜드의 상품이 주로 가격 경쟁력에만 몰두한다는 점에 착안해 ‘높은 품질의 저렴한 상품’을 취급하는 브랜드를 기획하기에 이른다.
세이부 백화점과 세이유를 운영하던 세종 그룹 대표 츠츠미 세이지는 각계 전문가를 불러모았고 이들은 당시 일본에 어떤 상품이 필요한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을지에 대해 브레인 스토밍을 시작했다. 브랜드명이 아닌 상품 퀄리티 자체로 승부를 걸겠다는 츠츠미 세이지 회장의 의지는 ‘무인(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과 양품(좋은 품질) 넉자에 담겨 세상에 나왔다.
"이유가 있어 저렴하다"는 브랜드 콘셉트는 당시 무인양품의 핵심이었다. 티슈나 기름 등을 리필용 용기에 담아 판매해 절판, 디자인 리뉴얼 등에 따른 용기 교체 비용을 감당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유명인을 고용하지 않는 광고 전략 역시 홍보 비용을 줄이는 데 이바지했다. 또 기존에는 생산 과정에서 생긴 결함 때문에 그냥 버려졌던 표고버섯을 ‘깨진 표고버섯’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절반 가격에 내놓는 영리한 전략으로 불필요한 낭비를 최소화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독특한 전략들은 후발 주자였던 무인양품을 단숨에 업계 강자로 끌어올렸고 1989년에는 아예 ‘양품기획’으로 독립, 독자 브랜드로 빠른 성장을 거듭해 나가게 된다.
1980년대 후반 독립 이래 약 10년간 무인양품의 고속 성장은 계속되었다. 시대적 운도 따랐다. 일본 버블 경제가 무너지고 장기 경기 침체가 시작됨에 따라 소비자들은 비싸고 화려한 것보다는 합리적인 소비를 선택하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무인양품의 매출 성장률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440%에 다다랐다. 하지만 위기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외견상으로는 급작스레 날아든 비보였지만, 실은 예견된 추락이었다. 성장의 환희에 도취된 사이 유니클로, 니토리, 다이소 등 가격 경쟁력과 좋은 품질을 내세운 회사들이 하나둘 무인양품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다. 경쟁사가 같은 품목의 제품을 30%나 저렴한 가격에 출시했음에도 당시 경영진 및 관계자들은 전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나태함은 곧바로 수익 저조로 이어졌다. 2000년까지만 해도 성장세를 이어가던 기업이 이듬해인 2001년 별안간 38억엔의 적자를 내며 창사 이래 최악의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가늠
결코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던 침체기는 한 사람의 결단과 추진력으로 빠르게 극복된다. 2001년 회사의 경영권을 이어받은 마쓰이 타다미쓰.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회사 체계를 차근차근 근간부터 수정해 나가며 무인양품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경영진의 개선과 점포 정리, 정리 해고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맸으며 20년 가까이 처분하지 않았던 재고품을 과감히 소각시켰다. 마쓰이 타다미쓰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지금껏 사내에 만연해 있던 주먹구구식 경험주의를 타파하고 모든 것을 시스템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해 내부 직원들이 직접 외주 제조업체를 방문해 제품 상태를 확인하고 품질을 컨트롤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쓰이 타다미쓰는 훗날 자신의 저서에서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라고 밝힌 바 있는데 그의 이런 생각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바로 총 13권 1994쪽에 달하는 매뉴얼 북 <무지그램>이다. 무인양품 전 매장에 비치되어 있는 방대한 분량의 이 매뉴얼에는 경영, 상품 개발, 매장 디스플레이부터 인사법과 잔돈 주고 받는 법까지 그야말로 브랜드 운용에 필요한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이런 접근 방식이 처음부터 모두에게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흔히 이런 체계화는 조직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누명을 쓰기 십상이다. 당연하게도 매뉴얼화는 내부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마쓰이 타다미쓰는 “가시화와 표준화가 가능해지면 회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8할은 해결할 수 있다”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결과, 매출이 바닥을 쳤던 2001년부터 불과 6년 만에 기적 같은 회복세를 이뤄냈다.

브랜드명이 아닌 상품 퀄리티 자체로 승부를 걸겠다는 츠츠미 세이지 회장의 의지는 무인(無印: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양품(良品: 좋은 품질)’ 넉자에 담겨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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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움이 이뤄낸 성공
브랜드 리빌딩에 있어서 무인양품은 자신들의 정신을 완전히 드러내기 보다는 외연을 다듬고 확장시키는 데 더 초점을 맞췄다. 다나카 잇코의 바통을 이어받아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가 된 그래픽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호화로운 물건을 만들기보다는 생활용품을 더욱 멋지게 만들자고 했던 다나카 잇코의 제안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고 말한바 있는데, 그의 이 말은 무인양품의 당시 기조를 잘 설명해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기능성 중심의 디자인은 이런 일관성의 산물이었다. 기존 브랜드 콘셉트였던 ‘이유가 있어 저렴하다’에 내재되어 있던 합리성과 실용성은 그대로 계승하되 불특정 다수가 공감하고 납득할 만한 디자인으로 작지만 큰 변화를 시도했다. 소비나 구매 단계를 넘어 ‘습관의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세계를 향한 공간과 시대를 품은 그릇
무인양품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장에도 눈길을 돌렸다. 그간 공간을 채우는 수많은 요소들, 즉 생활 집기류에 힘을 모았다면 2004년을 기점으로 공간 자체에 방점을 두기 시작했다. 본인들 스스로도 “생활용품에서 생활용품을 담는 바구니, 바구니를 담을 수 있는 가구, 가구를 담을 수 있는 집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무지 하우스다. 균일 생산을 통해 경제적이고 품질 좋은 부품을 생산해내고 이를 통해 레디-메이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기본 전략이다. 물론 이러한 공법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부품의 기성화에 따른 몰개성은 이 공법이 가질 수 있는 취약점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무인양품이 선택한 것은 비워냄과 세분화였다. 무인양품은 기둥이 거의 없는 단순한 박스 형태로 기본 구조를 설계한 뒤 3가지 기본 모델 아래 20 여개의 하부 유형을 설정했다.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나 땅의 형태 등에 따라 자유롭게 스타일을 고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따라 언제든지 주거 공간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한 것 역시 무지하우스의 특징이다. 제품 디자인에서 보여준 간소함과 범용적 기호성이 공간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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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 유통업체 세이유 산하 프로젝트로 기획된 무인양품(영문명: MUJI)은 ‘무인(無印: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과 ‘양품(良品: 좋은 품질)’이라는 이름에 브랜드 철학을 담아 1980년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최초 40여 종을 선보인 이래 현재 7000여 품목을 취급하는 무인양품은 주택 사업으로 관심을 넓히는 등 브랜드가 생활의 미의식을 판매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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