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나래
사진
니크 반 데르 기센

Masaya Kuroki

쿠로키 마사야
Co-founder & Creative Director, Maison Kitsun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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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스 로엑과 함께 메종 키츠네를 창립한 쿠로키 마사야는 브랜드 성격에 억지스럽거나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메종 키츠네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키워왔다고 말한다.


파리에 있는 길다스와 도쿄에 머무는 당신의 역할은 어떤 방식으로 나뉘어 있나요?


저희는 일을 분리하지 않아요. 매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모든 걸 공유하죠. 또 업무상 역할이란 단순하게 지역을 기준으로 나누기도 힘들어요. 언제라도 길다스가 도쿄에 올 수 있고, 마찬가지로 제가 파리에 갈 수도 있습니다. 저희 전략은 ‘같은 목표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아주 유기적이죠. 하루는 24시간으로 한정돼 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도쿄 뿐 아니라 뉴욕과 홍콩 등 도처에 흩어져 있으니까요. 삶이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명확하게 나눠서 말하기 힘든 것 같아요.

메종 키츠네는 파리와 도쿄, 두 도시에서 영향 받은 비전을 음악과 패션, 그리고 카페라는 서로 다른 채널을 통해 투영해왔습니다. 당신과 길다스 로엑은 메종 키츠네를 정확하게 어떤 브랜드라고 정의하나요?
사람들은 늘 키츠네가 뭘 하는 곳인지 헷갈려 합니다. 그래서 자꾸 그냥 ‘패션 브랜드’라고 말하곤 하죠. 그편이 가장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쉬우니까요. 메종 키츠네는 패션 브랜드이자 음악 레이블이고, 스토어와 카페를 운영하는 회사지만 조만간 호텔 브랜드라는 타이틀도 달게 될 겁니다. 한마디로 메종 키츠네는 저와 길다스가 사는 삶이고, 그 삶의 방식을 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예요. 길다스가 매년 휴가 때마다 발리를 찾을 정도로 그곳을 사랑하니 발리에 리조트를 짓고, 저는 발리보다는 ‘하와이파’니까 하와이에 팝업 스토어를 열거나 빌즈 하와이 Bills Hawaii 매장 한편에 기념품 가게인 메종 키츠네 포켓 스토어 Maison Kitsuné Pocket Store를 여는 식이죠.(웃음) 이건 둘이서 처음 뭔가를 시작하자고 했을 때부터 전부 계획한 것들입니다. 다만 그땐 정확하게 어떻게 해야 이걸 다 이룰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을 뿐이죠. 메종 키츠네는 작은 음악 레이블로 시작해 그때 계획한 일을 하나둘 실행에 옮기면서 아주 천천히, 느린 속도로 규모를 키워왔습니다. 처음에 저희 수중엔 단돈 3000유로가 전부였어요. 누가 “메종 키츠네가 패션 브랜드냐”고 물으면 저는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어요. 저희에겐 ‘셔츠의 깃 부분은 핑크로 해’라고 강요하는 돈 많은 투자자나 유명해서 스카우트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럭셔리한 쇼룸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죠. 길다스와 저는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나갈 뿐이에요. 더 이상 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땐 언제라도 회사 문을 닫으면 그만이에요. 굳어진 룰도, 정해둔 한계도 없다는 뜻입니다.

두 사람이 브랜드를 설립했을 당시 이야기를 조금 더 상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셀렉트 숍’이라는 용어 자체가 진부할 정도로 흔한 지금과 달리, 저희 둘이 다프트 펑크 일로 도쿄를 찾았을 때만 해도 전시장 한복판에서 가구를 팔거나 자전거 숍에서 접시를 파는 일은 꽤 실험적인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말이 되는 일이었죠. 사람들에겐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일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어요. 저와 길다스는 이런 심리에 착안해 음악과 패션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만들어보기로 했지요. 길다스와 저는 이 일을 복잡하게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복잡하게 보는 건 오히려 사람들의 눈이었죠. “키츠네가 뭔데? 콜레트에서 티셔츠를 판다고? 고가의 슈즈 브랜드 J. M 웨스통과 컬래버레이션을 했다고? 게다가 DJ야? 그런데 왜 캐주얼한 티셔츠를 안 입고 아이비 리그 애들처럼 옷을 입지?” 그렇게 메종 키츠네로 향하는 ‘호기심’을 유도했고, 지금도 그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호기심이 있어야 관심도 생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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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패션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그저 평범한 ‘티셔츠 가이’예요. 패션에서도 단순함을 추구합니다. 언젠가 친구들에게 “일흔다섯 먹은 노인 같다”고 놀림받은 이후로 무리해서 멋은 부리지 않고 있어요.(웃음) 패션 관련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건 길다스죠. 그는 온라인 세상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스타그램에 푹 빠져 쉴 새 없이 뭔가를 찾아 제게 전송하곤 해요. 트렌드가 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하면 키츠네의 방향성에 반영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 또한 그의 역할입니다. 패션과는 별개로 요즘 저희 둘이 골몰하는 흥미로운 주제는 바로 ‘아시아’예요.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마켓에서 아시아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의미가 달라진 것 같아요. 특히나 디자인 필드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의 활약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죠. 저희가 런던에 오래 살면서 세계를 무대로 일해온 디자이너 유니 안을 영입하기로 한 결정도 바로 이런 흐름과 관련있습니다. 유럽엔 ‘숨은 얼굴(behind face)’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많은 아시아인이 살고 있고, 그들의 재능이 하나둘 메이저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 같아요.


메종 키츠네가 브랜드만의 뚜렷한 개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희 스스로 브랜드를 위한 마켓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브랜드를 만들 무렵 특히 패션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경기장에 입장할 준비를 마쳤는데, 기술은 부족한 상태였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네요. 하지만 저희에겐 무기가 하나 있었어요. 그건 바로 스타일이었습니다. 스타일은 상당 부분 거리에서 창조됩니다. 거리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늘 창의적이거든요. 저는 거리의 사람들을 꽤 오래 지켜봤습니다. 어떤 치카노 Chicano(멕시코계 미국인)는 오버사이즈 셔츠를 입고, 또 어떤 러시아인은 가위로 바짓단을 싹둑 자른 차림을 하고 다녀요. 그들이 그렇게 입고 다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죠. 저항 의식으로 가득 찼던 펑크족이 재킷을 거꾸로 돌려 입은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 수 있어요. 길다스와 DJ로 전 세계를 돌면서 다양한 거리에서 사람들의 스타일을 관찰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키예프, 마카오, 스톡홀름, 뉴저지, 오사카, 도쿄 등 아이디어와 영감은 도처에 널려 있어요. 메종 키츠네의 비즈니스 전략은 전적으로 거리에서 출발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최근에 패션 브랜드들이 브랜드의 기존 아카이브 자료를 토대로 새로운 컬렉션에 반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메종 키츠네는 그보다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데 더 집중한 모습입니다.

저 역시 메종 키츠네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미 과거에 만든 무엇인가를 활용해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는 크게 흥미가 없습니다. 일단 아카이브 자료를 보관하는 데는 공간이 필요하고요. 만일 제게 그만큼의 여유 공간이 생긴다면 저는 아카이브 자료를 보관하는 것보다 카페 키츠네를 차리는 데 그 공간을 활용할 것 같아요.

 

쿠로키 마사야의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B>  ’메종 키츠네' 이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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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ldas Loaëc

Alexander E. Klein

Maison Kitsuné
Issue No. 69

Maison Kitsun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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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메종 키츠네는 날 선 취향으로 새로운 뮤지션을 발굴해온 음악 레이블에서 프레피 룩의 감성을 절묘하게 이식한 패션 하우스, 브랜드의 바이브를 담은 카페로 차근차근 브랜드의 레퍼토리를 넓혀왔습니다. 글로벌 팬덤을 거느린 브랜드로 성장한 이후에도 ‘여우’라는 뜻의 브랜드 이름처럼 자유로운 변신을 거듭하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영역을 섭렵하는 도전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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