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음악 레이블로 시작한 메종 키츠네는 프렌치 스타일에 절묘하게 섞은 일본 감성을 바탕으로 한 ‘프렌치 아이비 룩’을 통해 패션 브랜드로서 입지를 굳혀왔다. 동시에 카페 키츠네를 오픈하면서 브랜드 레퍼토리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영역으로도 확장하며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메종 키츠네라는 브랜드를 정의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누군가 “키츠네를 좋아해”라고 말할 때 그가 키츠네의 옷을 즐겨 입는다고 단정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다는 법은 없다. 키츠네 레이블의 음악을, 카페 키츠네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을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메종 키츠네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브랜드다. 키츠네의 티셔츠와 치노 팬츠를 입고 키츠네 스니커즈를 신은 채 키츠네 폰 케이스를 끼운 아이폰으로 키츠네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들으면서, 카페 키츠네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제공하는 지점이 키츠네라는 브랜드를 설명하는 가장 명확한 아이덴티티다.

파리의 거리에서 만난 두 창립자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길다스 로엑은 영국 음악에 심취한 소년이었다.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낸 크리에이터는 어떤 결핍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마련인데, 이는 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환경에 놓이는 순간 잠재되어 있던 모든 것을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곤 한다. 길다스 로엑은 훗날 저널리스트 겸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성장하는 그의 소울 메이트 로이크 프리장과 함께 구하기조차 쉽지 않던 ‹아이-디›, ‹인터뷰 Interview›, ‹더 페이스› 같은 수입 잡지를 찾아 나눠 읽었고, 매드체스터 madchester(얼터너티브 록 장르 중 하나) 음악이나 일렉트로닉 음악을 함께 즐겨 들었다. 레이브 파티를 경험하기 위해 함께 파리를 방문하기도 했다. 둘의 치열하던 10대는 메종 키츠네로 이어지는 그의 여정에 묵직한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로이크 프리장과 함께 파리로 상경한 그는 작은 상점 자리를 얻어 레코드 숍을 차렸다. 수익은 별로였지만 유일한 무기는 오랫동안 갈고닦은 취향을 바탕에 둔, 직접 여기저기 수소문해 수입해온 감각적인 음반 셀렉션이었다. 파리의 개성 있는 뮤지션들, 날 선 감각을 지닌 젊은이들이 하나둘 길다스 로엑의 레코드 숍 ‘스트리트 사운즈’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길다스 로엑이 다프트 펑크와 인연이 닿은 것도 바로 이 가게에서였다. 다프트 펑크의 멤버인 기마뉘엘 드 오맹 크리스토와 가까워진 그는 다프트 펑크의 매니저 겸 아트 디렉터 역할까지 하게 된다. 길다스 로엑과 함께 메종 키츠네를 이끄는 쿠로키 마사야는 상대적으로 다채로운 유년기를 보냈다. 도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2세가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 파리로 온다. 그가 머물며 10대를 보낸 파리 18구는 스트리트 아트가 깊숙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이후 뉴욕에서도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그에게 스트리트 컬처는 큰 문화적 기반으로 자리 잡는다. 파인 아트와 스트리트 아트에 대한 경험치의 혼재는, 전통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새로움’을 만드는 일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메종 키츠네가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쿠로키 마사야는 파리의 보더들이 모이던 스케이트 보드 숍을 자주 찾았는데, 그 가게가 바로 길다스 로엑의 레코드 숍 건너편에 있었다. 쿠로키 마사야가 손님으로 로엑의 가게에 드나들면서 둘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작지만 셀렉션이 기가 막힌 레코드샵 사장과 베스파 Vespa를 타고 옷 가게로 출근하는 건축학도 스케이트보드 보이. 메종 키츠네라는 기묘한 브랜드의 시작은 이처럼 운명적이었다.

메종 키츠네의 근간이 된 ‘일본’이라는 토양
‘여우’라는 의미의 일본어 ‘키츠네’를 이름으로 쓰는 이 프랑스 브랜드에 문화적 거점으로서 일본이 큰 영향을 미친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시발점은 놀랍게도 다프트 펑크다. 다프트 펑크는 2001년에 낸 두 번째 정규 앨범이자 ‘One More Time’,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Face To Face’ 같은 전설적인 수록곡을담은 ‹디스커버리 Discovery› 앨범을 기반으로, 뮤직비디오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들의 매니저와 아트 디렉터를 담당하던 길다스 로엑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도쿄에 갈 계획을 세우고 이를 도울 사람을 찾던 중, 건너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쿠로키 마사야를 떠올린다. 일어와 프랑스어를 둘 다 완벽하게 구사하는 마사야는 현지 프로덕션 매니저로 프로젝트를 돕게 되고, 팀은 함께 도쿄로 향한다. 20세기와 21세기의 일본은 서구 문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충격적인 ‘판타지’를 주는 곳이었다. 오랜 시간 축적해온 오리엔탈리즘과 극도로 발전한 울트라 모더니티가 공존하는 곳. 그 가운데 놓인 것만으로도 완벽한 이방인이 되는 놀라운 경험은 길다스 로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동양과 서구라는 2개의 커다란 문화가 충돌해 만든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문화적 대폭발의 부산물들은 도쿄 거리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고, 그 모든 것은 둘의 가슴을 마구 뒤흔들었다.
많은 패션 브랜드가 음악을 브랜드의 중요한 요소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메종 키츠네처럼 브랜드의 출발 자체가 음반 회사인 사례는 거의 없다. 메종 키츠네 이전에는 실제로 음반을 발매한 패션 브랜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2002년 길다스 로엑과 쿠로키 마사야가 함께 출장을 다녀온 후, 둘이 합심해 만든 뮤직 레이블 ‘키츠네’가 탄생한다. 오랫동안 레코드 숍을 운영하며 감각적인 여러 뮤지션과 교류해온 길다스 로엑은 자신의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아티스트를 모으고 키츠네라는 이름을 단 음반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해 발표한 ‹키츠네 러브 Kitsuné Love›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70여 개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냈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와 북미에서 패션 브랜드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그 뒤의 일이다.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프랑스식 표현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는 것, 동양의 취향을 잘 이해하면서도 낯선 시각으로 그 시장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그들만의 아메리칸 프렌치 스타일에 일본식 감성을 절묘한 포인트로 가미하는 메종 키츠네만의 재주는 전통과 동경, 고집과 이해가 뒤섞인 일본 패션 시장에 정확하게 들어맞은 셈이었다.

리테일의 여러 형식을 실험해 온 메종 키츠네가 하와이 빌즈 매장 내에 선보인 포켓 스토어.
리테일의 여러 형식을 실험해 온 메종 키츠네가 하와이 빌즈 매장 내에 선보인 포켓 스토어.

음악·패션의 자연스러운 시너지로 일군 아이덴티티
메종 키츠네가 첫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선보인 건 브랜드를 론칭한 지 3년 만인 2005년이다.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뚜렷한 구획은 있었다. 메종 키츠네의 옷을 하나의 주제로 설명한다면 아마도 ‘프렌치 아이비’가 가장 근접할 것이다. “키츠네 옷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어요. 품질이 좋은 타임리스 아이템, 그리고 패셔너블한 컬렉션.” 그런 조화는 키츠네가 다양한 연령층을 공략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클래식과 캐주얼, 대중적인 것과 소수를 위한 것이 모두 혼재된 메종 키츠네는 프렌치 아이비라는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됐다. 2008년에 파리에 첫 매장을 내고 2009년에는 콜레트에 입점했으며, 창립 10주년이 되는 2012년에는 뉴욕 맨해튼(노매드 호텔The Nomad Hotel에 연 매장은 현재 문을 닫았다)과 도쿄 아오야마에 각각 2호점과 3호점을 열었다.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 일본 패션 시장에서의 큰 성공이 뒷받침됐다. 성공의 근거는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쿠로키 마사야의 ‘애티튜드’에서 어렴풋이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인의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프랑스식 표현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는 것, 동양의 취향을 잘 이해하면서도 낯선 시각으로 그 시장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그들만의 아메리칸 프렌치 스타일에 일본식 감성을 절묘한 포인트로 가미하는 메종 키츠네만의 재주는 전통과 동경, 고집과 이해가 뒤섞인 일본 패션 시장에 정확하게 들어맞은 셈이었다.

 

카페·호텔 사업으로 확장한 키츠네식 쇼핑 경험
일본 신화 속에서 여우는 변신에 능한 동물이다. 2002년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그야말로 결정적 영감을 준 것은 일본에서 마주한, 하나의 공간에 음악과 패션이 혼재되어 시너지를 만들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리테일 문화였다. 그러니까 그들은 애초에 음악과 패션을 동시에 일굴 생각이었다. 그런 이상적 방향성을 갖고 ‘여우 같은’ 재치와 재능으로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음악을 패션의, 패션을 음악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과 달리, 메종 키츠네는 둘을 각각 따로 그리고 아주 제대로 구축해냈다. 음반 레이블로서 입지를 충분히 다진 다음, 그들의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준비해 선보인 것이다. 2005년에 처음 발매한 ‹키츠네 메종 컴필레이션 Kitsuné Maison Compilation› 시리즈의 첫 앨범은 마치 이를 기념하는 세리모니 같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들이 지향한 ‘마케팅적 활용’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음악과 패션을 겸하는 브랜드로서 자연스러운 시너지는 그 어떤 브랜드보다 더욱 효과적이었다. “저희는 광고 캠페인에 투자할 수백만 유로는 없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멋진 파티를 열어요. 파티가 곧 우리 광고 캠페인이 되어주죠.” 쿠로키 마사야의 말이다. 파티를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DJ가 무대를 구성하고 준비하는 동안 길다스와 마사야는 패션 브랜드로서 메종 키츠네를 대표하며 각 도시의 브랜드 담당자들, 의사 결정자들을 만나는 데 시간을 들인다. 그리고 2013년, 메종 키츠네는 도쿄에 카페 키츠네를 열었다. 음악, 패션, 거기에 식음료 문화로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전개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은 거의 모든 패션 브랜드에 중요한 목적지 중 하나였고, 메종 키츠네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메종 키츠네 전체 수익의 약 90%를 차지하는 패션 브랜드의 매출은 많은 부분 일본에서 이루어지는 중이다. 카페 키츠네는 파리에도 문을 열었고, 향후 다른 도시에서도 보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2018년 10월에는 서울 가로수길에도 메종 키츠네의 단독 매장을 열 예정이다. 그리고 2020년에는 인도네시아 발리 울루와투에 메종 키츠네 호텔을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쿠로키 마사야는 현재 일본에 머물며 브랜드 디자인과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길다스 로엑은 여전히 파리에 남아 새로운 아티스트를 찾고 레이블을 키워갈 것이다. 메종 키츠네라는 이름의 여우는 또 어떤 새로운 탈을 쓰게 될까? 이 브랜드를 한마디로 정의할 길은 여전히 묘연해 보인다.

Kenya Hara

Porsche

Maison Kitsuné
Issue No. 69

Maison Kitsuné

구매하기
2002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메종 키츠네는 날 선 취향으로 새로운 뮤지션을 발굴해온 음악 레이블에서 프레피 룩의 감성을 절묘하게 이식한 패션 하우스, 브랜드의 바이브를 담은 카페로 차근차근 브랜드의 레퍼토리를 넓혀왔습니다. 글로벌 팬덤을 거느린 브랜드로 성장한 이후에도 ‘여우’라는 뜻의 브랜드 이름처럼 자유로운 변신을 거듭하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영역을 섭렵하는 도전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rr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