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프랑스 출신의 두 창립자 에디 로시와 파브리스 페노가 뉴욕 놀리타에서 시작한 르 라보는 ‘실험실’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따온 이름처럼 조향사의 연구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컬트 향수 브랜드다. 원재료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상탈 33’, ‘로즈 31’과 같이 독자적 매력을 지닌 향 제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매장에서 직접 향수를 블렌딩해 병입하는 과정을 진행하거나 제품 라벨에 제조 날짜와 장소, 고객의 이름이나 원하는 메시지를 적을 수 있도록 하는 등 향수를 둘러싼 경험에 주목해 고유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갈색 병에서 시작한 자유로운 향수 세계
르라보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에디 로시는 명석한 사내였다. 스위스에서 화학을 전공했지만 학구적인 면과 동시에 창의적인 면을 지녔던 그는 과학자의 길 대신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친구의 소개로 찾아간 피르메니히 Firmenich라는 향료 개발 회사의 공장 투어에서 갈색 병 안에 담겨 있는 작은 우주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첫 직장이기도 했던 피르메니히는 세제나 보디로션부터 향수까지 일상에서 쓰는 다양한 제품에 들어가는 향료를 연구하고 제조하는 곳이다. 에디는 이곳에서 향수 개발과 관련한 기술과 과학적 지식을 익혔고, 4년 후인 2000년에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 Giorgio Armani Beauty의 향수 사업부로 직장을 옮긴 후 이곳에서 공동 창립자인 파브리스 페노를 만났다. 당시 파브리스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산하의 프랜차이즈 브랜드 중 하나인 아쿠아 디 지오 Aqua di Gio를, 에디는 엠포리오 아르마니 Emporio Armani를 담당했는데 향수 브랜드의 전체 콘셉트를 개발하고 관장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업무였다. 에디와 파브리스는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에게 아이디어를 보고하기 위해 매달 이탈리아를 오가며 서로 친분을 쌓았고, 비행기와 택시에서 틈틈이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다 자신들의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거대한 하우스 브랜드의 업무 방식에 지친 그들은 얼마의 준비 기간 끝에 2006년 공동 창립자이자 공동 아트 디렉터로서 뉴욕 다운타운의 놀리타 지역에 르 라보의 첫 매장을 오픈했다. 르 라보는 프랑스어로 연구실(the laboratory)이라는 뜻이다. 애초부터 다른 이름은 후보에 없었을 만큼 두 사람은 구상하는 바가 명확했다. “말 그대로 향수에 관한 연구실이면서, 대중에게도 열려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연구실처럼 고객이 향수를 만드는 여러 원재료의 향을 직접 경험하고 후각을 일깨울 수 있는 그런 곳 말이에요. 모든 제품을 주문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신선하게 블렌딩하고, 향수병에 붙는 라벨에 고객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모두 그런 생각의 연장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만든 그들의 향수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2000년대 중반부터 붐을 이룬 니치 향수 브랜드 사이에서도 독보적 성공을 거뒀다.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 것도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이다. 로즈 31은 이들의 시그니처이자 대표 제품으로, 누구나 흔히 고르는 향인 만큼 이들은 대중이 장미 향이라고 쉽게 인지하도록 하는 익숙하고 전형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그 자리를 우드와 머스크 혹은 전혀 의외의 다른 향료들로 채웠다. 덕분에 달콤하거나 여성스러운 느낌 대신 장미의 핵심만을 남겨 남성도 즐겨 사용할 수 있는 의외성이 깃든 장미 향수가 탄생했다. 르 라보는 로즈 31 외에 암브레트 9, 베르가못 22, 플레르 도란줴 27, 아이리스 39, 자스민 17 등 열 가지의 남녀 공용 향수를 브랜드 론칭 당시 컬렉션 개념으로 출시했고 이후 매년 신제품을 선보여 현재는 열여섯 가지 향수와 시티 익스클루시브 컬렉션, 보디 케어, 스킨케어, 남성 그루밍 제품 및 홈 퍼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르 라보의 설립 당시 취지를 담은 매니페스토의 내용
르 라보의 설립 당시 취지를 담은 매니페스토의 내용

상탈 33의 경우 무려 3년간 417회의 시향을 거쳤으며, 파브리스는 5개월 내내 상탈 33을 뿌리며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만든 그들의 향수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2000년대 중반부터 붐을 이룬 니치 향수 브랜드 사이에서도 독보적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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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소비를 권하는 라보만의 방식
캘빈 클라인, 겐조 Kenzo, 불가리 등 빅 브랜드의 향수에 지친 소비자를 위해 탄생한 니치 향수 사이에서도 
향수 제조의 핵심적 부분이자 매력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인 조향 과정을 전면에 내세운 르 라보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몇몇 백화점 매장을 제외한 전 세계의 르 라보 매장은 향수의 마지막 제조 단계인 블렌딩을 직접 현장에서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주문과 동시에 완성하는 ‘메이드-투-오더’ 방식으로 운영한다. 조향사의 연구실처럼 꾸민 매장에는 수많은 갈색 시약병이 진열되어 있고, 그 안에는 르 라보 향수에 사용하는 원료인 각각의 에센셜 오일이 담겨 있다. 시향 후 향수를 선택하면 전문 테크니션이 즉시 고객 앞에서 레시피에 따라 향료와 베이스를 블렌딩해 향수를 만든다.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거나
 제조 장소에 대해 굳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여느 브랜드의 행보와는 사뭇 다르다. 향수를 만드는 동안 고객은 선반 위에 놓인 원료의 향을 맡아볼 수도 있고 코튼이나 머스크, 말린 꽃과 같은 원료의 본래 모습을 살펴볼 수도 있다. 매장에 놓인 비커와 시약병, 저울은 조향사의 연구실이라는 실체감을 선사하는 오브제 역할도 한다. 물론 고객이 매장에서 경험하는 것은 실제 조향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향료와 베이스를 배율대로 조합하는 과정이지만, 브랜드 입장에선 조향 작업의 전문성에 대한 소비자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적당한 균형점을 찾은 셈이다.
르 라보는 직접 운영하는 매장을 통해 컬트 브랜드로서의 속성과 스토리를 고집스러울 정도로 완벽히 통제하고 전달한다. 파브리스는 그들의 방식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저희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유통의 고속도로를 달리지 않을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리테일의 미래는 백화점이 아니라 르 라보라는 브랜드의 스토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매장에 있어요. (중략) 르 라보는 갓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면 르 라보가 만들어내는 절반 이상의 가치가 사라지고 말 겁니다.” 철저히 비상업적 궤도를 택하는 르 라보의 이러한 철학은 그들의 도시 한정판 시리즈인 ‘시티 익스클루시브’에 응축되어 있다. 순수하고 깨끗한 우드 계열의 가이악 10은 도쿄에서만, 오리엔탈 감성의 뿌와브흐 23은 런던에서만 판매하는 식으로 각 도시에 자리한 매장마다 유일한 경험을 제공하도록 한다. 오직 해당 도시의 매장에서 그 도시를 위해 만든 향수 제품만 구매할 수 있다. 르 라보가 이런 특별한 경험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것은 르 라보라는 브랜드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영혼을 지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메가트렌드의 영향 아래 마치 찍어내듯 닮아가는 브랜드에 염증을 느낀 소비자를 자극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지상주의와 거리가 먼 르 라보에 대중적 성공을 안겨준 것이다.

와비사비 철학을 통해 기존의 틀을 저항 정신
르 라보를 소개하는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와비사비(わびさび)’다. 와비사비는 일본의 전통 미의식 혹은 미적 관념을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로, 덜 완벽하고 단순하며 본질적인 것을 뜻하는 ‘와비’와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하는 ‘사비’를 결합한 것이다. 르 라보의 향수를 비롯한 모든 제품과 매장은 이러한 와비사비 정신에 기인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기보다는 간결하게 비워내고 여백의 미가 있는 단순함을 추구한다. 뉴욕 웨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르 라보 매장은 그들이 생각하는 불완전한 미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본래 오래된 세탁소이던 자리를 매장으로 꾸미기 위해 벽체를 철거하던 중 100년은 족히 돼 보이는 아름다운 음각 타일로 덮인 천장을 발견했고, 후가공 없이 그대로 인테리어에 활용했다. 짙은 붉은색과 푸른색의 페인트가 뒤섞인 이곳의 천장은 겹겹이 쌓아온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부서진 타일과 여러
겹으로 덧칠한 벽지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은
 르 라보 매장의 인테리어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빈틈 없이 채워 완벽을 추구하는 여타의 브랜드와 달리 이 와비사비라는 독특한 철학이 기반에 깔려 있는 덕분에, 르 라보가 제품을 전개하는 방식은 기본으로부터 시작하지만 클리셰와는 거리가 멀다. 만약 그들이 정답을 찾기 위해 전통 방식에만 의존했다면 지금까지 르 라보가 일궈낸 독창성을 마주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Moscot

Hoshinoya

Le Labo
Issue No.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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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프랑스 출신의 두 창립자 에디 로시와 파브리스 페노가 뉴욕 놀리타에서 시작한 르 라보는 ‘실험실’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따온 이름처럼 조향사의 연구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컬트 향수 브랜드입니다. 원재료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상탈 33’, ‘로즈 31’과 같이 독자적 매력을 지닌 향 제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매장에서 직접 향수를 블렌딩해 병입하는 과정을 진행하거나 제품 라벨에 제조 날짜와 장소, 고객의 이름이나 원하는 메시지를 적을 수 있도록 하는 등 향수를 둘러싼 경험에 주목해 고유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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