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서재우
사진
신동훈

Joel, Harvey, Zack Moscot

조엘, 하비, 잭 모스콧
모스콧 패밀리 The Moscot Family
모스콧패밀리

하이만 모스콧이 뉴욕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자리한 오차드 스트리트에서 목재 수레에 안경을 담아 팔기 시작한 이후, 5대로 이어진 가족의 사업은 여전히 같은 거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모스콧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오차드 매장은 1936년 2세대인 솔 모스콧이 매장의 문을 처음 열었을 당시 사용한 의자와 나무 트레이, 각종 소품이 여전히 놓여 있고, 매장 벽면에는 당시를 회상할 수 있는 사진들이 걸려 있어 103년의 역사를 응축해 담아낸 전시장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오차드 매장에서 현재 경영을 이끄는 4세대 하비 모스콧과 디자인을 총괄 디렉팅하는 5세개 잭 모스콧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매일 이곳에 나와 직접 오래된 단골을 맞이한다. 인터뷰 당일엔 모스콧 경영직에서 물러난 3세대 조엘 모스콧까지 오차드 매장을 방문했다. 그는 103년째 같은 방법으로 고객을 위한 안경을 거짓 없이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모스콧의 핵심 가치라며, 하비와 잭을 한자리로 불러모았다.

오차드 매장을 인터뷰 장소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조엘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 지역의 작은 거리인 오차드는 모스콧의 시작점입니다. 1세대 모스콧이자 저의 할아버지인 하이만 모스콧은 이 거리 한복판에서 목재 수레에 안경을 담아 판매했어요. 저희가 제작한 아세테이트 프레임의 템플 팁 안쪽을 보면 황금색 수레가 각인돼 있는데 이는 모스콧의 시작을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1936년에 문을 연 첫 번째 매장 또한 이 거리에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2013년에 건물주가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투자를 하는 바람에 매장 위치를 한 번 옮겨야 했지만, 오차드 스트리트를 벗어나지는 않았죠. 이처럼 모스콧은 100년 이상 이 거리에서 이웃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저희가 오차드 매장 바로 위층에 오피스를 마련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에요. 고객과 함께 모스콧의 역사와 성취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모스콧은 현재 글로벌 아이웨어 마켓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성장했는데, 막상 매장과 오피스를 방문하니 여전히 규모가 작은 지역 안경원처럼 보입니다.
하비 모스콧(이하 하비)
저희는 여전히 지역사회의 일원입니다. 할아버지 솔은 단골의 안경을 무료로 교정해주는 것뿐 아니라 어려운 고객에게 새로운 안경을 무료로 나눠주기까지 했죠. 그는 늘 고객을 가족처럼 다정하게 대했고, 고객의 눈 건강을 위해 유능한 검안의를 길러내는 데 총력을 다했습니다. 지금 오차드 매장의 고객들 대부분이 할아버지가 운영할 당시 고객의 가족들일 겁니다. 저희가 가업을 대대로 물려받아 경영하듯이, 고객도 세대를 이어가면서 매장을 방문하는 것이지요. 저희는 이들과의 신뢰를 지키고자 외형적 확장보다는 내실을 단단하게 다져나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모스콧은 패밀리 비즈니스입니다. 당신들 모두 태어날 때부터 직업적 미래가 정해졌을 텐데, 다들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나요? 숙명처럼 느껴졌을 법도 해요.
조엘
18세 때 본격적으로 모스콧의 일원이 됐습니다. 아버지에게 직접 안경 업무를 배우면서 모스콧의 성공을 위해 노력했죠. 저는 제 운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부모의 생업을 이어나가는 아버지의 열정을 통해서 긍정의 힘을 자주 얻었으니까요.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와 같은 훌륭한 남자가 되고 싶었죠. 가업을 이어나가는 숙명은 제게 훈장 같은 명예였습니다.
하비 증조할아버지가 시작한 사업을 제가 계속해서 이끌고 있습니다. 18세기의 일이 21세기로 연결되어 펼쳐지는 것이지요. 저는 엄밀히 말하면 비즈니스맨은 아닙니다. 사람의 눈 상태를 검사하고 처방하는 전문의죠. 오히려 제 동생 케니가 경영인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현재 저는 모스콧의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오차드 매장에서 성장했어요. 가장 먼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도 이곳이죠. 제 미래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노력할 수 있었고요. 가족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잭 모스콧(이하 잭) 모스콧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모스콧 매장의 스태프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저는 안경 프레임 디자인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시력이 나쁜 고객의 눈을 돌봐주는 동안 그들의 얼굴에 어울리는 안경을 찾아주는 일에 흥미를 느낀 것이죠. 전 좋아하는 안경 프레임을 디자인하기 위해 산업디자인을 공부했고, 빈티지와 클래식의 대명사라 불리는 안경 프레임에 새로운 재미와 편의성을 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웨어 산업을 이끌어가는 숙명을 받아들이면서, 제가 좋아하는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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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드 매장에서 본 가장 놀라운 풍경은 캐주얼한 복장을 한 하비가 손님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취재로 만난 인터뷰이 모두 모스콧의 대표와 매장에서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브랜드의 강점으로 꼽았고요.
하비
정말 많은 시간을 매장에서 보냅니다. 전통을 지키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고객 서비스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경영자로서 가장 큰 업무이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고객 서비스 개선을 최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모스콧의 성장은 고객과 함께합니다. 20세기 중·후반까지 계속된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절에도 저희는 고객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어요. 고객의 눈을 검사하는 전문의로서 갖는 사명감이 제가 매장을 이끄는 동력입니다.

솔 모스콧이 고객의 안위를 돌본 것처럼 고객을 후원하는 프로그램을 지금도 운영하나요?
하비
2008년 모스콧 모빌아이즈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시력 검진과 치료비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더 도 펀드 The Doe Fund와 같이 지역민의 환경 개선에 힘쓰는 비영리기관과 함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안경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고요.

안경 제작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디자인한 안경 프레임을 모델링한 다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상용화할 수 있는지 최종 평가합니다. 제품 출시가 확정되면 중국 공장에서 본격적인 제조가 시작되는데, 커팅을 제외한 모든 과정을 100% 핸드메이드로 제작합니다. 안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은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공수하며 제작하는 동안 공장과 긴밀하게 협력해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 합니다. 완성된 제품은 뉴욕에서 최종 품질 테스트를 거쳐 세상에 선보이죠.

안경의 모델명도 흥미롭습니다.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어떤 의미를 담은 상징적 단어 같기도 합니다.
조엘
오리지널스 라인의 모델 중 하나인 ‘졸맨’은 아버지 솔 모스콧의 본명입니다. 그가 쓰던 1920년대 모델에서 영감 받은 안경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모델명으로 정했어요. ‘하이만’은 이름을 통해 유추할 수 있듯이 1세대 모스콧인 하이만 모스콧의 이름이고요. 이처럼 오리지널스 라인은 가족과 스태프의 이름, 단골의 애칭 등에서 힌트를 얻어 모델명을 지었습니다.

모스콧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단어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조엘,하비,잭
클래식과 아이코닉의 합성어인 ‘클래시코닉’입니다. 저희의 안경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와 스타일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으니까요.

 

조엘, 하비, 잭의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B>  '모스콧' 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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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ien Haug

Kengo Kuma

Moscot
Issue No. 64

Mosc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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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과 트루먼 커포티, 조니 뎁이 즐겨 쓴 안경으로 유명한 모스콧의 역사는 1915년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시작합니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절 단종된 과거의 안경을 복각하며 성장 기틀을 마련해 100년 넘게 역사를 이어 온 모스콧은 흰색 면 티셔츠, 청바지, 윙팁 구두와 같은 아메리칸 클래식의 기본 아이템이자 가장 상징적인 빈티지 아이웨어 브랜드로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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