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은 직관성과 감성을 무기로 8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전 세계 대중의 취향과 상호작용 방식을 완전히 뒤바꾼 미디어 혁명의 주역이다. ‘위치 기반 사진 공유’라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끊임없이 미디어 사용 환경에 적응해 끝내 대중의 생활 방식을 바꾸며 시대를 대변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세대의 감성으로부터 시작한 아이디어
케빈 시스트롬은 1983년 12월 30일 태어났다. 20세기의 최후반기에 유소년기를 보냈다는 의미다. 이 시기를 거친 세대는 아날로그 문명의 끝자락과 디지털 문명의 창세기를 동시에 접할 수 있었다. 인터넷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새로운 문명이 움트는 한편, 정보의 판매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게 오프라인 서점이나 음반 가게에서 이루어졌다. 아날로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실물의 세계와 디지털에서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무형의 세계, 두 세계를 동시에 접하며 유년기를 보낸 셈이다. 시스트롬 역시 이 세대에 속해 있었고, 이는 초기 인스타그램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시스트롬의 첫 커리어는 IT나 컴퓨터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의 첫 직장은 보스턴의 한 레코드 숍이었다. “(고등학교 때) 디제잉에 빠져 있었어요. 동네 레코드 숍에 일자리를 좀 달라고 매일 이메일을 보냈죠. 조르고 또 졸라 결국 숍에서 절 채용해줬고, 일주일에 2시간씩 일했습니다.” 시스트롬이 ‹포춘 Fortune›과의 인터뷰에서 회상한 내용이다. 그는 한 가지에 빠지면 다른 걸 못 보는 자기 성격을 설명하면서 이 에피소드를 예로 들었지만, ‹포춘›은 그 와중에 좀 더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냈다. 바로 그의 ‘레트로 지향성’. 아날로그 정서가 묻어나는 레트로 지향성은 초기 인스타그램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보스턴의 고등학생 시스트롬은 LP에 자신의 젊음을 모두 바치지는 않았다. 케빈 시스트롬은 결정적 시기에 학업을 그만두고 레코드 가게 주인이 되는 대신, 미국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시스트롬의 대학 생활 전반을 보면 이른바 ‘스타트업 엘리트’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거친 전형적인 패턴을 볼 수 있다. 스탠퍼드를 졸업한 시스트롬은 구글에 취업했고, 프로덕트 마케터로 일하면서 지메일, 구글 캘린더, 구글 시트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단 2년만 일하고 퇴사했다.
‘청년 퇴직자’ 시스트롬은 구글을 퇴사한 이들이 모여 창업한 여행 정보 제공 소셜 사이트 넥스트스톱 Nextstop에 합류했다. 시스트롬은 그때 이미 자신만의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당시 발매된 아이폰 4의 뛰어난 카메라 성능을 주목했다. 그리고 여기에 모바일 기기의 특징 기능인 위치 정보를 접목해 ‘위치 기반 사진 공유’라는 서비스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직접 이 서비스 앱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초기 아이디어만으로 25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는 데 성공했다. 투자금까지 받았으니 시스트롬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첫 번째는 퇴사. 시스트롬은 넥스트스톱을 떠나 버븐 Burbn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프로토타입을 좀 더 본격적인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발전시켰다. 위치에 기반해 사용자가 서로의 사진을 공유하는, 아주 간단히 말해 포스퀘어에 사진을 접목한 형태의 기본 아이디어는 그대로 유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기술적 면을 책임져줄 파트너가 필요했다. 시스트롬은 스탠퍼드 2년 후배인 마이크 크리거를 영입했다. 그러나 스탠퍼드 2인방이 야심 차게 내놓은 첫 서비스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시스트롬은 이런 와중에도 향후 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읽어냈다. 바로 사진이었다. 버븐 사용자들은 사진을 올리는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인스타그램은 이렇게 시도와 반작용과 그 적응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물이었고 이후 인스타그램의 변신과 발전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상업과 공학, 힙스터 감성이 결합한 성공 전략
시스트롬과 크리거는 본격적으로 사진에 더 집중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갔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이탈리아 피렌체로 사진 연수를 떠나 알게 된, 저렴하면서도 미묘한 레트로풍의 사진을 만들어내는 토이 카메라 홀가 Holga의 감성을 기억해냈다. 시스트롬과 크리거는 이 홀가 특유의 사진 톤을 디지털로 재현한다는 목표로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다. 서비스는 새 방향성과 함께 새 이름을 갖게 됐다. ‘인스턴트 instant(즉시, 즉각)’텔레그램 telegram(전보)’을 조합해 만든, 바로인스타그램이라는 이름이다. 인스타그램은 독특한 감성으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초창기부터 인스타그램을 사용한 유명인 중에 저스틴 비버 Justin Bieber도 있다2010 10 6일에 론칭한 서비스가 겨우 두 달 뒤인 12 12일을 기해 월 활동 계정 수 100만 개를 돌파했다. 1년이 채 되지도 않은 2011 9 26일엔 1000만 개를 돌파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폭발적 증가세를 뒷받침하는 서버의 안정성이다. 파죽지세의 성장세를 무리 없이 이어갔다는 것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사용량과 데이터를 누군가 매끄럽게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은 아마존 웹 서비스(AWS)에 기반해 1400만 개의 활동 계정이 올려대는 15000만 장의 사진 트래픽을 단 3명의 엔지니어로 막아냈다. 2012 4, 창업 1년 반 만에 인스타그램은 10억 달러(당시 시세로 한화 약 1조 원)의 금액으로 페이스북에 인수됐다. 구글의 엘리트 코스에 끼지 못해 회사를 나온힙스터경영학 학사가 날린 홈런이었다.

인스타그램이 찾아낸 콘텐츠 플랫폼 비즈니스의 금맥은 다름 아닌 ‘창작’에 있다. 인스타그램 성공의 본질은 비주얼 콘텐츠 제작의 기술적 난도를 끊임없이 낮춘다는 점이다. 유저가 활발하게 창작하지 않는 SNS는 결국 유행에 뒤처진다.

빌딩 로비, 회의실, 통로 등 곳곳에 설치된 미디어월에는 인스타그램 에디토리얼팀이 직접 큐레이션한 피드와 동영상이 재생된다.
빌딩 로비, 회의실, 통로 등 곳곳에 설치된 미디어월에는 인스타그램 에디토리얼팀이 직접 큐레이션한 피드와 동영상이 재생된다.

페이스북에 인수된 견고해진 사업 정체성
인스타그램이 지금과 같은 거대한 채널로 성장한 데엔 페이스북의 뒷받침도 크게 작용했다. 인스타그램의 존재감이 초반부터 남달랐던 건 사실이지만, 페이스북이 인수하기 전까지는 그저 꽤 인기 있는 서비스의 하나에 불과했다. 인수 당시까지도 인스타그램이 갖고 있던 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입자 수, 즉 성장세뿐이었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사들이기 위해 입찰 경쟁자인 트위터가 부른 5억 달러의 무려 2배를 썼다. 그만한 돈을 주고 인수한 회사가 전 직원이 고작 13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라는 점 또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과대평가라는 의견도 많았지만,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2018 6 25일 기사에서 만약 인스타그램이 단일 기업이라면 그 기업 가치는 약 1000만 달러( 100조 원) 정도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페이스북은 투자의 100배를 벌어들인 셈이다. “인스타그램을사진 공유 앱이라고 말하는 건 신문을문자 공유용 책자라고 말하거나 모차르트 시대의 음악을음표 모음집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거물이 된 시스트롬은 2015가디언 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화려한 비유처럼 초창기 성공을 이끈 사진이라는 요소는 이제 인스타그램이라는 세계의 일부일 뿐, 진짜 중요한 변화는 인스타그램이 소셜 플랫폼이 되었다는 데 있다. 사업가, 소비자, 아티스트. CEO 시스트롬이 언급한 이 세 가지 유형은 그대로 인스타그램의 사용자 패턴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지금 인스타그램은 사업자에게는 매력적인 광고 포맷이며, 일반 소비자와 아마추어 크리에이터에게는 시간을 때우고 놀기에 아주 좋은 놀이 도구다. 프로페셔널 아티스트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새로운 루트가 될 수 있다. 즉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사람의 거의 대부분을 플랫폼 안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인스타그램은 2017 4 27일을 기점으로 월 활동 계정 수 7억을 넘겼다. 그보다 조금 앞선 2017 3 23일엔 광고주 100만을 돌파했다. 여기서 페이스북의 역할은 단순한 자금주 이상이었다. 시스트롬은 다양한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페이스북 주식회사의 일부가 되는 것의 가장 큰 힘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경험이 많고 가장 지적이며 사려 깊은 사람들과 함께 회사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스타트업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항상 재미있는 부분과 재미없는 부분이 있는데, 페이스북이 바로 그런재미없는부분을 처리해준 거죠. 이를테면 인프라라든가 스팸 관리, 세일즈 같은.” 여기서 시스트롬이 대충 말하고 지나간 인프라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세일즈 마케팅, 타게팅, 연관성 분석 알고리듬 소스 등이야말로 페이스북이 기술 개발과 경험을 통해 획득한 매출의 열쇠라 할 수 있다.

고유 콘텐츠가 지탱하는 미래
인스타그램이 성공한 본질은 비주얼 콘텐츠 제작의 기술적 난도를 끊임없이 낮춘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램은 점점 더 손쉽게 퀄리티 높은 사진과 영상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콘텐츠 생산 도구로서 인스타그램은 아주 친절하다. 사진 기반이라 번거로운 글은 쓰지 않아도 된다. 사용자에게 친절하기 위해 초반 정체성이던 홀가에서 영감을 얻은 정사각형 프레임까지 버렸다. 아이팟이 클릭 휠을 버린 수준의 정체성 변환이다. 대신 인스타그램은 외부 여론이 자기 서비스를 흔드는 걸 허락한 적이 없다. ‘리그램 Regram’을 할 순 있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비해 인스타그램은 타인의 게시물을 인용하기가 훨씬 어렵다. 무엇보다 리그램에서는 인용한 횟수가 표시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인터페이스에서는 인용을 통한 권위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피드 안에서는 오직 인스타그램 알고리듬만 여론을 만들 수 있다.  인용과 평론을 권하지 않고 특정인의 여론 몰이를 허락하지 않으며, 자체 창작을 응원하는 인스타그램은 이제 새로운 장르의 유명인을 만들었다

플랫폼 브랜드로서 무한한 가능성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 부편집장 톰 스탠디지 Tom Standage는 자신의 책소셜 미디어 2000에서 소셜 미디어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정보에 목말라 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인용하고 확산시키는 인간의 본능은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디어 발전의 역사를 길게 놓고 보았을 때, 인스타그램이야말로 가장 혁명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브랜드다.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이 인터넷에 연결되기만 하면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으니, 좋게 말하면 인스타그램 피드 안에서는 창작의 민주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민주화된 콘텐츠 창작 플랫폼인 동시에 마약화된 콘텐츠 소비 플랫폼이지만, 이 사이에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잡는 건 엄밀히 말해 각 계정의 주인 몫이다. 인스타그램은 끊임없이 미디어 사용 환경에 적응해 끝내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었다.  인스타그램은 언제나 새로운 이미지의 생산과 창작을 권장해왔다는 사실이다. 더 간단한 유저 인터페이스로, 더 다양한 이미지 변환툴로, 이미 성공한 수많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인스타그램은 인간을 그저 공유하는 대신 창작하게 했다. 늘 새로운 그림이 나오는 액자이자,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는 화수분이 되었다. 이 시스템이 작동되는 한 인스타그램은 앞으로도 활동 계정을 늘릴 것이다.

Hoshinoya

Eva 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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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No.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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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두 청년 케빈 시스트롬과 마이크 크리거의 손에서 시작된 인스타그램은 창립 8년 만에 전 세계 월 활동 계정 수 10억을 돌파하며 가장 영향력 있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문자와 언어의 한계를 초월한 이미지 중심 커뮤니케이션의 직관성, 커뮤니티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수렴해 서비스에 발 빠르게 적용하는 사용자 중심의 사고는 인스타그램의 성공 토대를 만들어온 핵심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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