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럭셔리 리조트인 호시노야는 1904년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서 창립한 호시노 리조트의 플래그십 브랜드다. 가루이자와, 교토, 다케토미지마, 후지, 도쿄, 발리에서 총 6개 지점을 운영하는 호시노야는 가장 일본적인 서비스와 접객 철학의 집약체인 료칸을 현대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숙박업의 장르를 제시하고 있다.

피서지 가루이자와의 발전
호시노 리조트의 시작은 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가노현을 거점으로 제조업에 몸담고
 있던 창업주 호시노 군지 Gunji Hoshino는 소유하고 있던 가루이자와 대지에서 온천 개발에 착수했고,
 개발 작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흐른 1914년, 지금의 호시노야 가루이자와가 위치한 자리에 호시노 온천 료칸을 개업했다. 가루이자와는 나가노현 동부 기타사쿠 지역과 아사마산 남쪽 기슭 아래로 펼쳐진 고원을 축으로 형성된 마을로, 에도 시대에 여행이나 공무를 위한 긴 여정을 떠나야 했던 관리들이 잠시 묵었다 가는 숙박업으로 번성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변화한 시대상황에 따른 여객의 감소와
 함께 개통 예정인 국도의 노선에서도 제외되며 급격히 쇠퇴했다. 메말라 버린 땅에 반가운 서양인 두 사람이 찾아온 건 1886년의 일이다. 시찰 중 우연히 가루이자와를 찾은 영국
성공회 소속 선교사 알렉산더 크로프트 쇼 Alexander Croft Shaw와 도쿄 제국대학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이던 제임스 메인 딕슨 James Main Dixon은 습도가 높은 도쿄와 달리 고원 특유의 청량한 기후와 서구적 풍광을 갖춘 가루이자와의 자연에 감탄했다. 피서지가 필요했던 메이지 정부의 외국인 고용자들과 생계 수단을 찾고 있던 지역 주민들의 수요가 맞물리면서 가루이자와는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호시노 온천 료칸이 문을 연 1914년에 이르러 가루이자와의 피서객 수는 3000명, 별장 수는 249개를 기록했다. 창업주 호시노 군지는 이런 가능성을 일찍이 감지하고 숙박업계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소유 버리고 운영만 남긴 새로운 경영 방침
현재 호시노 리조트 대표를 맡고 있는 호시노 요시하루가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일본의 버블 경제가 무너진 직후인 1991년이다. 그는 게이오 대학교(Keio University)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코넬대(Cornell University) 대학원에서 호텔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일본항공개발(현 오쿠라 닛코 호텔 매니지먼트)에 취직해 호텔 경영 노하우를 착실히 익혀갔다. 이후 호시노 온천 료칸의 이사로 취임했지만, 아버지와의 의견 충돌과 일부 직원들의 반발로 반년 만에 퇴임했다. 그 후 시티 은행에서 잠시 근무하다 1991년, 다시 호시노 온천 료칸으로 돌아와 4대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 비로소 안정된 시작이었다. 그는 “굉장히 어려운 착지였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설상가상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버블 경제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호시노 온천 료칸의 수익 또한 조금씩 줄어들었다. 업계 안에서의 경쟁도 격렬해져 갔다. 대기업과 싸워본들 처참하게 밟힐 것이 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대대적 혁신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일반적으로 호텔이나 리조트 사업엔 금융, 개발, 소유, 운영이라는 네 가지 큰 틀이 존재한다. 일본의 호텔과 리조트 회사는 소유와 운영을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본래 이 네 가지 역할엔 각각 다른 노하우가 적용된다. 버블 경제 시기에 우후죽순 설립된 리조트 시설은 이미 공급 과잉 상태였는데, 그는 그 상황에서 시설을 소유하고 투자하는 데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고 판단해 1992년, 물려받은 료칸의 부동산을 처분하고 운영을 특화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환을 발표했다. 부동산으로 야기될 수 있는 위험 부담을 덜게 되자 눈에 보이는 성과도 늘었고, 그의 예상대로 경영난에 부딪힌 전국의 시설에서 운영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호시노 리조트의 료칸 리조트 재생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버블 경제 시기에 우후죽순 설립된 리조트 시설은 이미 공급 과잉 상태였는데, 대부분이 부동산 투자와 개발로 문을 연 곳이었다. 결국 퍼포먼스가 좋지 못한 시설이 과잉된 형국이었으므로 호시노 요시하루 대표는 머지않아 운영 노하우의 니즈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1992년, 물려받은 료칸의 부동산을 처분하고 운영을 특화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환을 발표했다. 부동산으로 야기될 수 있는 위험 부담을 덜게 되자 눈에 보이는 성과도 늘었고, 그의 예상대로 경영난에 부딪힌 전국의 시설에서 운영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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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조직 문화가 가져온 변화
지금의 호시노 대표가 사장으로 취임한 후 난관을 
겪은 부분은 인재 모집이다. 호스피털리티 시장은 성숙해졌고 자금 조달 또한 초반에 비해 쉬워졌지만, 우수한 인재를 찾는 것은 어려웠다. 1995년 ‘호시노 리조트’로 회사명을 바꾸고 조직 문화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미지 전환이 필요했다. 복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각각의 직원이 자기 일에 주인 의식을 가지고 진심으로 즐길 때 비로소 수익도 높아질 것이라 믿었다. 이를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수평적 조직 문화’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직원은 수평적 조직 안에서만 각자가 속한 시설과 업무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행동한다. 직원 모두에게 의사 결정권을 부여하고 모든 사안은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결론짓게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직원들은 자유롭게 고객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안하고, 이는 고객과의 소통으로 이어져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 Hoshino Resorts Tomamu’의 대표적 체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운카이 테라스 Unkai Terrace’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시시각각 변하는 도카치산의 풍경을 감상하는 이 아이디어는 당시 스키장의 리프트 운행을 담당했던 직원에게서 나왔다.

현대적 일본 료칸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 전개
호시노 리조트는 ‘파죽지세’라는 표현이 더없이 어울릴 만큼 도전적인 사업 전개로 주목받아왔다. 호시노 대표는 거침없는 이미지와 달리 비즈니스에 관해선 보수적인 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비즈니스 이론에 맞지 않는 일은 절대 진행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판단 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한 호시노 대표만의 경영 방식이다. 그가 참고하는 인물은 미국의 경영학자 필립 코틀러 Phillip Kotler로, 마케팅 콘셉트나 서비스 방향성을 정할 땐 그의 이론에 맞는 패러다임을 구상하곤 한다. 2016년 7월, 일본의 금융 중심지이자 세계적 호텔 체인이 줄지어 들어선 도쿄 오테마치에 호시노야 도쿄를 오픈한 것이 바로 그 증거다. 훌륭한 서양식 호텔은 이미 넘쳐나게 많다. 일본인만이 가능한, 일본이라서 가능한 호스피털리티, 전통적인 료칸 문화에서 비롯한 오모테나시를 통해 ‘도심형 료칸’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완성하고 세계 진출을 노렸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갈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호시노 요시하루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지키기만 하는 전통은 유지될 수 없다. 우리가 100년 이상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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