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티크는 1961년 파리 생제르맹 가 모퉁이의
작은 패브릭 부티크에서 시작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뛰어난 미적 취향과 예술적 감성을 지닌 세 창립자가 만들고 지켜낸 브랜드 가치는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빛을 발하고 있다.

예술가에 가깝던 트리오
1960년대 초반은 프랑스 사회가 약 30년에 걸친 수직적 경제성장을 시작하던 시기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집을 소유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과 기회와 자유를 꿈꾸기 시작했다. 새로운 생활과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물건에 대한 욕망도 자연스레 커졌다. 말하자면 당시는 모든 ‘새로운 것’에 대한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 시절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딥티크의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딥티크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인 ‘딥티코스 Diptykhos’에서 유래했다. 딥티코스는 둘로 접을 수 있는 목판화를 의미하는데, 맨 처음 오픈한 부티크의 입구 양쪽에 창문이 두 개 있었기 때문에 탄생한 이름이다. 이렇게 딥티크라는 브랜드명에는 ‘둘’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그 시작에는 이브 쿠에슬랑, 데스먼드 녹스 리트, 크리스티안 고트로라는 세 창립자가 있었다. 모두 예리한 취향과 예술적 품위를 갖춘 파리 출신의 트리오다.
이브 쿠에슬랑이 에콜 드 루브르 École du Louvre를 졸업했을
때, 변호사이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명망 있는 비즈니스 스쿨에 들어가길 원했다. 하지만 입학 시험에 실패한 그는 CLC 은행에 입사했다. 얼마 되지 않아 따분한 은행 업무에 지친 이브는 극장으로 일자리를 옮겼고, 공연 기획부터 배우, 세트 디자인까지 온갖 분야를 도맡았다. 1959년, 이브는 영국 출신의 화가 데스먼드 녹스 리트를 만났다. 당시 데스먼드는 에콜 데자르 데코라티프 École dés Arts Decoratif를 졸업한 모자이크 디자이너 크리스티안 고트로와 함께 패브릭을 디자인해서 팔고 있었는데 색채와 형태, 그래픽을 강조한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의 제품이었다. 이들은 영국의 유명 패브릭 회사인 리버티 앤 샌더슨 Liberty & Sanderson에 납품할 만큼 디자인을 인정받고 있었다. 데스먼드와 크리스티안은 서로 비슷한 미학적 관점을 지녔고 진실성, 독립성, 상상력을 강조하는 사람들이었다. 1961년 공연 시즌이 막을 내릴 즈음 이브는 결정을 내렸다. 데스먼드, 크리스티안과 함께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셋은 파리 생제르맹 34번가에 작은 가게를 얻어 직접 제작한 아름다운 패브릭을 팔기로 했다. 창업 비용은 이브가 아버지에게 빌렸다. 당시 34번가는 ‘카페 드 플로르 Cafe de Flore’ 나 ‘레 두 마고 Les Deux Magots’ 같은 파리 유명인사의 아지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오히려 그런 위치가 주는 묘한 이질감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데스먼드와 크리스티안이 전 세계에서 공수한 패브릭에 디자인과 색채를 더하는 아티스트라면, 이브는 컨설턴트이자 실질적 관리자였다. 세 사람에겐 언제나 신선한 아이디어와 예술적 재능이 넘쳤고, 그것으로 당시 파리 사람들의 오리지낼리티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면 소재의 날염 패브릭은 그 시절엔 지나치게 모던하게 느껴져 결국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소파나 커튼 등 모든 인테리어용 패브릭으로 실크나 벨벳을 즐겨 사용하던 파리 상류층에게 면은 낯선 소재였다. 하지만 이 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돈보다 그들이 팔고 있는 상품의 가치였다. 크리스티안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아티스트였어요. 아티스트는 돈이나 야망에 휘둘리지 않죠. 열정, 영감, 창조적 마인드가 중요했어요.” 그들은 성공을 위한 마케팅 기술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들의 모토는 자유로운 삶과 진정성 있는 디자인이었다.

파비엔 모니는 딥티크를 ‘순응하지 않는 브랜드’로 정의한다. “딥티크 창립자들은 향수 세계로 가는 또 다른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향기와 함축적 의미를 지닌 자연 재료들로 작업합니다.” 또 그녀는10년 후에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면서 더욱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 말한다.

본격적인 퍼퓸 하우스로 전환
포푸리와 향초는 패브릭과 달리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내며 큰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데스먼드는 이 인기를 이어 향수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16세기식 향수 레시피에서 힌트를 얻어 시나몬, 제라늄, 정향, 로즈, 샌들우드를 블렌딩해 1968년 출시한 딥티크 최초의 오 드 뚜왈렛 ‘로 L’eau’는 그들이 그때까지 경험한 동시대 향수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제품이었다. 1966년 디올에서 출시한 ‘오 소바주 Eau Sauvage’가 강렬한 남성용 향수의 전형으로 당시 향수에 대한 업계의 일반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면, 딥티크는 애초부터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향기를 만들고자 했다. 화가 데스먼드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러하듯 향수가 자기 표현의 또 다른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는 딥티크에서 가장 중요한 ‘코’의 역할도 담당했다. 1982년 한 잡지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나는 모든 것의 냄새를 아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과시적이거나 자극적인 향을 싫어했고, 영국의 목초지 같은 심플한 자연 향기나 지중해 지역 음식에서 맡을 수 있는 스파이시한 향을 좋아했다. 데스먼드의 향기를 향한 열정은 딥티크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인에게 영국산 핸드메이드 포푸리를 소개한 주인공으로 데스먼드는 계속해서 그리스의 여름, 이탈리아의 아침 이슬, 싱그러운 무화과나무, 유럽 시골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럽고 단순한 향기를 향초와 향수로 재현해나갔다. 그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완벽한 비율을 찾아냈고, 영국과 파리의 약재상에서 다양한 에센스를 수집했으며, 여행을 떠날 때마다 가방을 향기 재료로 가득 채워 돌아왔다.
1968년 출시한 ‘로’에 이어 1973년에 선보인 ‘비네그르 드 뚜왈렛’, 1975년에 내놓은 ‘로 트로와 L'Eau Trois’까지 그들이 발표하는 향수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셋은 패브릭과 인테리어 소품을 모두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향수와 향초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올리비아 자코베티 Olivia Giacobetti, 올리비에 페쇠 Olivier Pescheux, 파브리스 펠르그랑 Fabrice Pellegrin 같은 위대한 조향사들과 함께 새로운 향들을 만들었다. 파브리스 펠르그랑은 딥티크와 가장 많은 작업을 해온 조향사 중 한 명이다. “딥티크와 일한 경험은 다른 향수 회사와 일했을 때와 전혀 달랐습니다.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롭게, 저만의 방식대로 만들 수 있었죠. 그 점은 제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지금껏 시장에 존재하지 않던 창의적 요소를 실험해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는 또한 딥티크를 향수 세계의 ‘트렌드세터’ 라기보다 일종의 ‘혁신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자신감은 함께 일하는 향수 제조자들에게까지 전달되어 최고의 향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줍니다. 다른 곳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딥티크는 돈이나 야망에 휘둘리지 않고 아름답고 진정성 있는 아이템을 팔겠다는 초기의 정신을 지키면서도 브랜드를 국제시장에서 성공시켜나갔다. 비록 손해를 안겨주는 향수라 해도 그 향을 좋아하는 소수의 고객을 위해 단종하지
않고 계속해서 제작하기도 한다. 향수 역사학자이자 에콜 데 파르퓌뫼르의 강사인 엘리자베트 드 페이도 Elisabeth de Feydeau 역시 자신의 저서 <딥티크 Diptyque>에서 이런 사실을 언급했다. “딥티크는 언제나 완벽하게 창의적이며 자유로웠다. 상업적 제약이라는 족쇄에 끌려 다니지도 않았다. 트렌드나 소비 패턴을 분석하지도 않았으며, 컬렉션을 만들거나 스케줄을 정해놓고 일하지도 않았다. 대신 꿈과 상상력과 뛰어난 품질을 제공했다.”

시간을 뛰어넘는 ‘모던 뷰티’
지금도 파리의 34번가 생제르맹 스토어에 가면 예전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향수병에 새겨 넣은 기발한 라벨 디자인부터 아름다운 패키지에 사용한 로고 타이포그래피와 디테일까지, 아트와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는 딥티크가 무엇을 만들어왔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벽에 걸린 장식도 50년 전 그대로고, 캐비닛에는 초창기 제품을 전시해놓아 창립자
세 사람의 기운까지 간직하고 있다. 바닥의 카펫, 데스먼드가 직접 칠한 벽과 패널도 여전히 처음 모습 그대로다. 높은 나무 선반에는 선물용으로 포장한 제품이 놓여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어떤 부분은 현대화하고 있기도 하다. 새로 오픈하는 스토어 중에는 심플하고 현대적인 디스플레이를 선보이는 곳도 있다. 2012년 새롭게 디자인한 타원형 향수 용기는 두꺼운 유리병에 현대적 느낌의 검은색 뚜껑을 달고 나왔다. 브랜드의 뿌리를 보여주는 라벨은 앞면은 그대로 유지하되 병의 뒷면에 각각의 향수에 얽힌 스토리를 그린 일러스트가 비치도록 했다. 딥티크에서는 이제 밤 타입의 고체 향수, 휴대용 롤온 향수, 스킨케어, 향이 나는 장식용 오브제와 전자 디퓨저까지 생산한다. 얼마 전에는 스킨케어 라인도 선보이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기도 했다.

파비엔 모니는 딥티크를 ‘순응하지 않는 브랜드’로 정의한다. “딥티크 창립자들은 향수 세계로 가는 또 다른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향기와 함축적 의미를 지닌 자연 재료들로 작업합니다.” 또 그녀는10년 후에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면서 더욱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 말한다. “향수 세계에 새로움을 불어넣는 브랜드가 되고자 합니다. 이 의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34번가 라인을 출시한 일이죠. 우리가 추구하는 미학 자체를 물질화한 것이자 딥티크의 노하우 전부를 집어넣은 라인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언제나 기존 규칙을 뛰어넘는 것, 그리고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최근 니치 향수 시장이 커지고 다양한 브랜드가 수면 위로 부상해 주목받으면서 향수는 물론, 향 제품 전반에 대한 소비 규모와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딥티크는 이런 변화가 있기 훨씬 전부터 오롯이 제자리에서 존재감을 발휘해오고 있다.

Rolf Sachs

Record Forum

Diptyque
Issue No. 31

Dipty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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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티크는 예술가 출신의 세 창립자 이브 쿠에슬랑, 데스먼드 녹스 리트, 크리스티안 고트로가 1961년 시작한 프랑스의 향기 브랜드입니다. 딥티크는 기억을 환기시키는 독창적 향기와 디자인으로 니치와 럭셔리의 경계를 허문 대표적 향기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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