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시크의 선봉이자 패션의 대명사가 된 샤넬이라는 이름은 한 여성의 솔직하고 담대한 내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연간 매출이 1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거대한 제국을 이룬 지금도 샤넬은 브랜드의 유산을 수호하는 동시에 시대와 긴밀한 호흡을 유지하며 창립자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가브리엘 샤넬은 사교계 여자들의 불편하기 짝이 없는 요란스러운 치장을 싫어했고, 무엇보다 극도로 단순한 스타일링을 통해 자신을 다른 여성과 구분 짓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선보인 모자 역시 깃털 같은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걷어내고 단정한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심플한 디자인으로 당대 트렌드세터라 할 수 있는 여배우와 가수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며 유명해졌다. 패션을 장르로 나눈다면 프렌치 시크는 리스트의 맨 위를 차지할 것이다. 이는 또한 ‘샤넬’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어야 마땅할 터다.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샤넬의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은 어릴 때 익힌 바느질 솜씨와 주변 지인들 덕분에 모자와 의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파리 방돔 광장에 자리한 호텔 리츠 파리의 스위트룸에서 말년을 보내다 떠난 그녀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제1·2차 세계대전이라는 극적인 시대 배경과 어우러져 전설이 되었다. 또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패션에 향기까지 더해 창조한 토털 룩 total look은 아직 그 어떤 디자이너도 뛰어넘지 못한 신화로 남아 있다.

여성 디자이너가 이끄는 패션 제국의 시작
1883년 프랑스의 소도시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샤넬은 수녀가 운영하는 고아원 오바진 Aubazine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엄격하고 검소한 고아원에서의 경험은 훗날 샤넬을 상징하는 블랙 앤드 화이트의 컬러 대비와 더블 C 로고, 리틀 블랙 드레스에 영감을 주었다. 열여덟 살부터는 의상실에서 봉제 일을 하는 한편, 밤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불렀다. 가브리엘 샤넬은 부유한 에띠엔 발상 Ètienne Balsan을 만나며 그의 도움으로 상류사회의 핵심에 진입할 수 있었다. 가브리엘 샤넬은 사교계 여자들의 불편하기 짝이 없는 요란스러운 치장을 싫어했고, 무엇보다 극도로 단순한 스타일링을 통해 자신을 다른 여성과 구분 짓고자 했다. 그녀가 선보인 모자는 깃털 같은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걷어내고 단정한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심플한 디자인으로 당대 트렌드세터라 할 수 있는 여배우와 가수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며 유명해졌다. 발상이 가브리엘 샤넬의 사업을 취미쯤으로 여겼다면, 아서 카펠 Arthur Capel은 그녀의 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1910년 1월 샤넬이 파리 깡봉가 21번지에 모자 숍을 차리도록 도와주었다. 그 이름은 ‘샤넬 모드 Chanel Mode.’ 샤넬 제국의 시작이었다.

가브리엘 샤넬은 사교계 여자들의 불편하기 짝이 없는 요란스러운 치장을 싫어했고, 무엇보다 극도로 단순한 스타일링을 통해 자신을 다른 여성과 구분 짓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선보인 모자 역시 깃털 같은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걷어내고 단정한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심플한 디자인으로 당대 트렌드세터라 할 수 있는 여배우와 가수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며 유명해졌다.

1980년대 초 칼 라거펠트의 샤넬 컬렉션 

1980년대 초 칼 라거펠트의 샤넬 컬렉션 


개인의 명성과 함께 높아진 브랜드의 위상
1912년, 그녀는 프랑스 북서부 해변에 위치한 도빌 Deauville에 샤넬 부티크를 열고 해변으로 향하는 여성을 위해 아름답지만 불편했던 수영복보다 훨씬 더 움직임이 자유롭고 가벼운 슈미즈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성공과 유명세를 함께 거머쥐었다. 1915년 카펠은 가브리엘을 전쟁의 포화에서 빗겨나 있던 프랑스 남부 도시 비아리츠 Biarritz로 데려갔다. 유럽 각국의 상류층과 러시아 귀족들이 모여든 비아리츠에서 가능성을 본 그녀는 카펠에게 투자받아 1915년 7월, 워크숍이 딸린 오트 쿠튀르 하우스를 열었다. 비아리츠에서의 시작은 그녀가 도빌에서 이루었던 성공을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1918년, 카펠에게서 독립한 샤넬은 파리 깡봉가 31번지 6층 건물로 자신의 부티크를 옮겼다. 이 곳이 바로 수많은 여성의 발걸음을 이끈 지금의 샤넬 깡봉 부티크다. 그녀는 자신의 창작물을 아이콘으로 만들었고, 시대의 흐름을 감지할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로 늘 그 흐름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혁신적 발상으로 계속된 가브리엘 샤넬의 창작 세계
1920년대 샤넬은 경쾌하고 보이시한 스타일의 원조였다. 특히 1910년대에 처음 선보이고 1926년에 여러 버전으로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는 지금까지도 세련된 우아함의 전형으로 손꼽히는 디자인이다. 비슷한 시기, 샤넬은 ‘영국에서 제일가는 부자’ 웨스트민스터 Westminster 공작과의 연인 관계는 훗날 1950년대 여성의 유니폼이 된 샤넬의 상징, 트위드 수트를 탄생시켰다. 남성복에서 영감을 받아 카디건 스타일의 디자인에 실용적인 아웃 포켓을 더한 구조적 실루엣의 트위드 재킷은 평소 움직임이 많은 여성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무엇보다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의 앙상블 콘셉트를 동일하게 유지하되 매 시즌 조금씩 변주하는 방식으로 시즌을 초월하는 아이콘을 만들어냈다는 데서 샤넬의 탁월한 상업적 감각은 빛을 발했다.

극적인 성공과 부침을 겪으며 써 내려간 샤넬 신화
1921년엔 전설의 샤넬 향수 N°5 가 에르네스트 보 Ernest Beaux 에 힘입어 탄생했다. 에르네스트 보는 여러 꽃 성분을 조합했고 다량의 알데하이드를 향수에 최초로 사용했다. 향수는 매끈한 유리병에 담았고 두 개의 알파벳 C를 겹친 더블 C 로고를 새겨 넣은 정사각형 모양의 뚜껑과 함께 선보였다. 샤넬은 당대의 ‘잇걸’들에게 자신의 첫 향수를 뿌리도록 하거나, 깡봉 부티크 공간 내부를 향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입소문을 만들어내었고 N°5 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향수가 되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하우스의 휴업 상태가 이어지자 샤넬의 이름 또한 명성을 잃는 듯했다. 그는 1954년 2월 5일, 70세의 나이로 패션쇼를 발표하며 자신의 쿠튀르 하우스를 재개장했다. 평론적 시선에서 샤넬의 컬렉션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녀는 테일러링, 컬러, 디테일을 점진적으로 고급스럽게 변주하고 발전시키는 혁신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력하게 구축했다.

토털 룩의 개념을 완성해 일군 패션 왕국
1950년대는 샤넬이 ‘토털 룩’을 완성시킨 시기다. 하우스를 상징하는 요소인 블랙· 화이트· 베이지·레드·네이비라는 컬러에 충실했고, 1954년 세공업자 로베르 구쌍 Robert Goossens을 통해 커스텀 주얼리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선보인 커스텀 주얼리는 르네상스 스타일의 금박에 유리로 만든 보석과 진주를 세팅한 형태로, 구쌍 공방은 지금도 샤넬 하우스를 위한 핸드메이드 주얼리를 생산하고 있다. 1955년 2월에는 공식 발표 날짜로부터 모델명을 따온 전설적인 클래식 백 ‘2.55’를 선보였고 1957년에는 구두 장인 마사로 Massaro가 만든 투톤 슈즈가 탄생했다. 가방과 신발, 주얼리 군에서 대표 상품을 출시하며 트위드 수트와 리틀 블랙 드레스의 토털 룩을 완성한 샤넬은 자신의 신화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마드모아젤 샤넬의 정신을 계승한 칼 라거펠트
상업적 성공의 기틀을 닦아 승승장구하던 샤넬은 1971년 마드모아젤 샤넬이 8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이후 잠시 정체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브랜드의 재건에 가장 강력하게 힘을 보탠 것은 1983년 칼 라거펠트를 영입한 일이다. 마드모아젤 샤넬이 그랬던 것처럼 칼 라거펠트는 남성복과 스포츠는 물론, 서브컬처에서 가져온 해체적이고 전위적인 요소로 브랜드에 동시대적 감각을 주입했다. 그의 창조적 재능 또한 다양한 유명인사를 매료시켰고 샤넬이라는 브랜드에 친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칼 라거펠트는 젊고 아름다운 셀러브리티를 샤넬 광고 캠페인에 처음으로 기용했다. 이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참신하게 유지하는 그의 탁월한 재능을 입증하는 사례 중 하나다.

럭셔리와 컨템포러리를 오가는 샤넬의 현재와 미래
샤넬 하우스는 현존하는 럭셔리 브랜드 중에서도 브랜드 유산을 활용하는 데 적극적일 뿐 아니라 시대와 기민하게 호흡해왔다. 패션쇼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와 광고 역시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큼 세련되고 동시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늘날 리틀 블랙 드레스, 재킷, 니트웨어, 투톤 슈즈, 2.55 백과 같은 샤넬의 아이콘은 이후 등장한 보이 샤넬 백(2011년), 샤넬의 가브리엘 백(2016년) 등과 함께 매 시즌 칼 라거펠트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으며 워치 & 화인 주얼리와 계속적으로 발표하는 향수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창조성과 노하우, 혁신으로 대표되는 샤넬의 핵심 가치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제품군으로 샤넬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Tyler Brûlé

Lululemon

Chanel
Issue No. 73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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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은 가브리엘 샤넬이 20세기 초 프랑스에 세운 세계적 럭셔리 기업으로, 파리 깡봉가 31번지라는 상징적 장소를 포함해 전 세계 190여 개에 달하는 패션 부티크를 두고 레디투웨어와 핸드백, 액세서리, 아이웨어부터 향수와 코스메틱, 화인 주얼리, 워치까지 다양한 범주의 제품을 선보입니다. 또한 파리에서 선보이는 오트 쿠튀르 컬렉션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아트 디렉터 칼 라거펠트의 창조적 지휘 아래 ‘궁극의 럭셔리’와 최고의 품질, 남다른 노하우를 펼치는 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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