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 챔피언스리그는 1955년 프랑스 최대의 스포츠 일간지 <레키프>의 저널리스트 가브리엘 아노가 전 유럽을 아우르는 클럽 대항전을 구상하며 조직했다. 첫 대회부터 이어진 흥행은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갔으며, 1992-1993 시즌에 유러피언컵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로 명칭을 바꾼 이래 대회 진행 방식을 거듭 개선하며 세계 최고 권위의 축구 대회로 성장해왔다.

한 기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대회
챔피언스리그가 유럽 클럽 대항전의 시초는 아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왕국에 소속된 팀들이 자웅을 겨룬 챌린지컵을 시작으로 선수 출신 자이드 에딜비가 1927년 조직한 ‘미트로파컵 Mitropa Cup’, 1930년대 스위스 클럽 세르베트가 만든 ‘쿠프 데 나시옹 Coupe des Nations’, 라틴 유럽 국가들이 1949년 창설한 ‘라틴컵 Latin Cup’이 존재했다. 챔피언스리그의 기틀을 닦은 것은 UEFA가 아닌 한 기자다. 축구 선수 출신 가브리엘 아노 Gabriel Hanot는 프랑스 최대의 스포츠 일간지 <레키프 L’Équipe>의 저널리스트로 재직하다 전 유럽을 아우르는 클럽 대항전을 떠올렸다. 아노를 자극한 건 영국 언론이 쓴 기사 한 줄이었다. “울버햄프턴이 유럽의 챔피언이다.” 아노는 1954년 12월 15일 <레키프>에 지금까지도 회자되곤 하는 문장을 썼다. “모스크바와 부다페스트에서 승리를 거둔 울버햄프턴을 유럽 최강이라 부르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AC 밀란이나 레알
마드리드 같은 강팀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표현은 삼가야 한다.”
아노는 이 기사를 시작으로 전 유럽 클럽이 참가하는 대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연작 기사를 내보냈고, 이어 ‘유럽 클럽 간 컵 프로젝트 Projet de Coupe d’Europe Interclubs’를 발표하며 첫 대회를 조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움직임에 몇몇 팀이 화답했다. 대회 개최를 가로막는 현실적인 벽도 비교적 쉽게 넘었다. 1955년 2월, FIFA는 <레키프>에 대회를 조직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뜻을 전했다. 여기에 국가 대항전을 조직하는 게 첫 번째 소임이므로 클럽 대회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같은 해 3월 1일에는 UEFA가 <레키프>가 조직한 대회에 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각국 축구협회의 소관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각국 축구협회는 소속 팀들의 대회 참가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입장이었다. FIFA와 UEFA의 벽을 넘은 <레키프>는 대회에 참가할 16팀을 확정했고, 7개 경기장도 섭외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FIFA가 제재를 가했다. 안전을 문제 삼아 UEFA로 하여금 대회 운영에 관여할 것을 명령했고, 대회 명칭에 유럽 Europe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영국축구협회 또한 첫 대회에 비협조적이었는데, 초청받은 1954-1955 시즌 챔피언 첼시의 출전을 불허했다. 첼시는 대회에 참가하려 했으나 결국 7월 26일 <레키프>에 공식 불참을 통보했다. 마침내 첼시를 제외한 각 국가를 대표하는 16팀(초기에는 각 리그 우승팀만 참가한 게 아니다)이 대회 참가를 확정했고, 아노의 구상은 현실이 됐다. 대회 명칭은 ‘유러피언컵 European Cup(프랑스어로는 Coupe des Clubs Champions Européens)’이었다.
첫 대회는 성공이었다. 1955년 9월 4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포르투갈의 스포르팅 포르투갈과 유고슬라비아의 파르티잔 베오그라드 경기에는 약 3만 명의 관중이 몰렸다. 경기는 3:3 무승부로 끝났다.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펼친 토너먼트에서 우승의 영광은 레알 마드리드가 차지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1956년 6월 13일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치른 스타드 드랭스와의 결승전에서 4:3으로 승리하며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을 찾은 관객은 무려 3만8239명이었다. 경제 효과는 바로 뒤따라왔다. 가장 먼저 유러피언컵에 참가한 구단의 관중 수입이 늘어난 것이다. <레키프>는 “만약 스타드 드랭스가 우승을 차지했다면 그들의 이익은 2000만 프랑에 달했을 것” 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대회를 주관하며 경기 관련 소식을 실은 <레키프>의 판매율도 점점 올라갔다. 대회를 시작한 1955년 12월에는 판매율이 전년 같은 달 대비 7.5% 상승했고, 결승전이 열린 1956년 6월에는 전년 같은 달 대비 30.5%나 오르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챔피언스리그가 월드컵의 위상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국가보다는 도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유럽인은 대표팀 경기보다 자신들의 도시를 
연고로 한 클럽에 더 열광한다. 로마에 거주하는 사람이 자신을 이탈리아인이 아닌 로마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유럽에서 꽤 흔한 일이다.

2008-2009 시즌

월드컵을 뛰어넘는 위상
헤이젤 참사 이후인 1980년대 후반, 유러피언컵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졌다. 각국의 챔피언만 참가했기에 참가팀과 경기 수가 한 단계 낮은 등급의 대회인 UEFA컵(현 UEFA 유로파리그) 보다 적었고, 자연히 연관된 도시와 시민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UEFA컵은 유러피언컵을 넘보기 시작했다. 위기에 처한 유러피언컵은 변화를 결심했고, 1992-1993 시즌부터 챔피언스리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간판만 바꾼 게 아니다. 토너먼트의 연속이던 대회 방식을 바꿔 조별 리그 형식을 일부 도입했다. 토너먼트를 벌여 8강에 오른 팀을 2개 조로 나눠 풀리그를 펼쳤고, 각 조에서 1위를 차지한 팀이 결승전을 벌이는 방식이었다. 챔피언스리그 초대 우승팀은 AC 밀란을 1 : 0으로 누른 프랑스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였다. 챔피언스리그는 1997-1998 시즌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대회 방식을 변경했다.
전 시즌 챔피언만 참가할 수 있는 참가 조건을 UEFA 랭킹이 높은 리그의 2위 팀도 참가할 수 있도록 바꿨다. 1999-2000 시즌에는 UEFA 랭킹이 높은 3개 리그의 4위 팀까지 대회 참가가 가능했고, 이 참가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회 방식 역시 변화를 거듭하다 1·2·3차 예선-플레이오프(이상 예선)-조별 리그(8개 조, 이하 본선)-토너먼트로 이어지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2013- 2014 시즌을 기준으로 현재 총 52개국 76팀이 125경기를 치른다. 유러피언컵 첫 대회에서 16개국 16팀이 30경기를 치른 것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성장을 실감할 수 있다.
챔피언스리그가 몸집만 키운 건 아니다. 사회·경제적 의미도 커졌다. 유럽에서는 이미 챔피언스리그가 월드컵의 위상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국가보다는 도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유럽인은 대표팀 경기보다 자신들의 도시를
연고로 한 클럽에 더 열광한다. 로마에 거주하는 사람이 자신을 이탈리아인이 아닌 로마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유럽에서 꽤 흔한 일이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감독의 말은 이런 유럽 내 챔피언스리그의 위상을 잘 드러낸다. “챔피언스리그는 지구 상 최고 권위를 지닌 대회다. 개인적으로는 챔피언스리그가 월드컵보다 더 낫다. 월드컵은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부터 정체돼 있다. 챔피언스리그 참가팀은 32강전부터 모든 선수가 전력을 다해 좋은 경기를 펼치는데, 월드컵에서는 본선이 돼야 수준 높은 경기를 볼 수 있다. 월드컵을 보느니 차라리 치과에 가는 게 더 낫다.” 퍼거슨 전 감독과 같은 맥락의 말을 한 선수도 있다.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기 전 일본 축구 스타 나카타 히데토시 역시 “월드컵 결승전보다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경험하고 싶다”는 강렬한 염원을 밝힌 바 있다.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클럽 재정 건전성과 동의어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자국 리그 우승과 의미가 비슷하다.” 경제학 박사 출신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의 이 말은 8년간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가 아니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은 각 클럽에 막대한 이익을 보장한다. UEFA는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 진출한 32팀에 최소 860만 유로(약 121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한다. 각 팀이 16강, 8강, 4강에 진출할 때마다 별도 수당을 주고, 우승팀엔 추가 상금까지 지급한다. 2013-2014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바이에른 뮌헨은 수당과 우승 상금 1050만 유로(약 148억원)를 합해 약 500억원을 챙겼다. 챔피언스리그의 우승 상금은 스포츠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높다. 여기에 중계권료와 입장 수익을 더하면 바이에른 뮌헨이 2013-2014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올린 수익은 1000억원에 달한다. UEFA는 방송사에서 받은 챔피언스리그 중계권료를 참가팀에 분배한다. 가장 먼저
각국 축구협회에 분배하는데, 금액은 해당 국가의 TV 시장 활성화 정도와 규모에 따라 다르다. 축구협회는 UEFA에서 받은 중계권료를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자국 팀에 나눠준다.
한 국가에서 여러 팀이 챔피언스리그에 나서면 각 팀이 받는 중계권료 규모가 작아지는 셈이다. 하지만 중계권료 규모가 워낙 크기에 이 과정에서 불만이 나오지는 않는다. 2012-2013 시즌 UEFA의 중계권료 분배액은 총 4억1000만 유로(약 5836 억원)였다.
UEFA 배당금과 중계권료, 입장 수익 외에 스폰서 수익 역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은 세계적 구단을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 인지도가 높고 중계를 많이 하는 팀일수록 스폰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전 세계에 중계하는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팀은 가장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지난 4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세계 최고 가치를 지닌 축구팀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선정했다. 2위가 바르셀로나, 
3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이 매체가 2004년부터 축구팀의 가치를 조사한 이래 줄곧 1위를 지키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13년 2위로 밀렸고, 2014년엔 한 계단 더 떨어졌으며, 자산 가치는 11%나 감소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가치가 떨어진 이유에 대한 <포브스>의 설명은 이렇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한 것이 가치 하락을 가져왔다.”

Laurence Prang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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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mpions League
Issue No.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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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축구 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UEFA 챔피언스리그는 1955년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클럽 대항전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대회명과 구조를 재편하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전해온 챔피언스리그는 매년 유럽 각 도시에 기반을 둔 클럽이 모여 최강자를 가리는 형태를 통해 축구팬에게 월드컵을 뛰어넘는 강력한 충성도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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