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정혜선
사진
찬타피치 위왓차이카몰

Alice Pfeiffer

알리스 파이퍼
'레 젱록큅티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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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전문 저널리스트인 알리스 파이퍼는 메종 키츠네가 오늘날 젊은 층에 패션을 비롯한 총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함으로써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한다.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지난 2년간 편집장을 맡았던 패션 매거진 <안티도트 Antidote>를 떠나 1986년에 창간한 문화 주간지 <레 젱록큅티블 Les Inrockuptibles>(이하 <레 젱록>)의 편집장으로 최근 자리를 옮겼어요. <레 젱록>의 전 편집장인 제랄딘 사라티아 Geraldine Sarratia는 제가 정말 쓰고 싶은 패션 기사에 지면을 할애해준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뒤를 잇게 되어 감회가 남다릅니다.

동시대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패션 전문 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패션에 관심이 컸나요?
특별히 패션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학계에서 금기시하는 모든 것에 끌린 것 같아요. 소위 ‘지성인’ 사이에서 패션은 여성지나 대중음악, 리얼리티 쇼처럼 형편없고 경박한, 논의할 가치가 없는 주제로 치부되곤 하니까요. 그렇게 엘리트 사회에서는 배제하지만 대중에겐 널리 소비되는 대중문화는 제게 늘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었어요. 그중에서도 주로 ‘고급’과 ‘하위’라는 말로 구별되는 문화 간의 위계와 권력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관심이 컸는데, 이런 대중문화부터 사회 구조, 페미니즘, 패션까지 이어지는 저의 관심 영역을 하나로 연결해준 것이 ‘젠더 스터디’였습니다. 패션을 보다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다는 욕구는 영어권 매체에서 패션 기사를 의뢰받으면서 더 커졌어요.

럭셔리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가 상당 부분 무너진 현상을 포함해, 지난 10년간 파리 패션계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최근까지 프랑스 패션은 곧 파리 패션, 파리 패션은 곧 럭셔리 패션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어요. 프랑스에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나 기성복 브랜드의 입지는 전통적으로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유독 낮아요. 파리의 의류 도매시장인 상티에 Sentier에서 시작한 기성복 브랜드는 아무리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둬도 프랑스 패션계에서 늘 하류 취급을 받죠. 어떤 이들은 하이패션을 ‘대문’, 상티에를 ‘쪽문’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패션업계는 오랜 세월 ‘돈 많고 교양 있는 귀족’이라는, 오로지 한 가지 이상향을 투영해왔어요.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코셰 Koché, 와이/프로젝트 Y/Project, 에튀드, 아보크 Avoc 같은 파리 신진 디자이너들의 등장과 선전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형화된 파리지앵 스타일에서 탈피해 각자의 방식으로 ‘파리식 엘레강스’를 새롭게 정의한다는 것이에요. 이 젊은 크리에이터들은 소비자에게 ‘우리 옷이 당신을 골든 보이로 만들어줄 것입니다’는 환상을 팔지 않아요. 스스로 억만장자가 되길 꿈꾸지도 않고요. 진정성이라는 가치가 다시 패션 브랜딩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죠. 이렇게 새로운 노선을 택한 신진 디자이너들의 등장은 젊은 층의 소비 경향 변화와 연결 지어볼 수 있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다수 패션 소비자의 목표는 ‘있어 보이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불황이 지속되면서,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럭셔리 패션의 관객 혹은 ‘워너비’가 되길 단념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비싼 옷을 사지 않고도 ‘쿨’해 보일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젊은 소비자에겐 옷을 넘어 공유할 수 있는 가치와 문화를 제시한 신진 브랜드가 훌륭한 대안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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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패션 브랜드는 옷을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인데, 메종 키츠네와 같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브랜드의 등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메종 키츠네는 과잉 생산 시대에서 옷만으로 승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크리에이터 중 하나예요. 앞서 제가 얘기한 것처럼 과거의 소비자가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짓는 도구로 패션 아이템을 선택했다면, 현대의 소비자는 옷을 통해 사회적, 문화적 소속감을 드러내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이들은 자신이 소비하는 브랜드가 자신이 속한 사회나 집단의 윤곽을 나타내는 지표이길 기대하죠. 이런 변화된 요구에 대응해 오늘날 패션 브랜드들은 좀 더 총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메종 키츠네는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공간에 가고, 어떤 파티를 즐기는지 끊임없이 드러내면서 자신들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어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죠.


단순한 공생관계를 넘어 패션산업이 음악 산업, 나아가 서브컬처 전반을 길들인다는 의견엔 어떻게 생각하나요?

매우 복잡한 문제예요. 하지만 패션이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상류사회에 공급한 것은 비단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죠.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 낮에는 전 세계 부르주아 여성들의 옷을 만들고 저녁엔 지하 게이 클럽에서 파티를 즐긴 이브 생 로랑 Yves Saint-Laurent, 지아니 베르사체 Gianni Versace 같은 디자이너들은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언더그라운드 음악 문화를 럭셔리 패션에 유입하기 시작했어요. 최근의 현상을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어느새 패션이 음악의 트렌드를 검증하는 위치에 놓였고, 음악이 그를 통해 대중에게 퍼지고 사라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는 거예요. 어떤 시즌엔 모두가 힙합을 듣고 바로 그다음 시즌엔 다 같이 테크노를 듣는 식이죠. 이들에게서는 이전 음악 소비자가 특정 장르에 품은 감성적인 애착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음악도 패션 아이템처럼 한 철 소비되고 버려지는 상품이 되는 건 아닐까 우려되긴 합니다.

메종 키츠네 외에 눈여겨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있나요?

현시대에 존재하는 브랜드 대부분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지향한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거예요. 요사이 흔히 이야기하는 브랜딩 혹은 큐레이팅 문화는 비단 패션계뿐 아니라, 문화계 전체를 관통하는 현상이기도 하고요. 패션 매거진이 디너 이벤트나 강연을 기획하고, 독립 라디오 채널이 콘서트를 구상하고, 패션 브랜드가 리미티드 앨범을 만드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죠. 이런 와중에 제가 눈여겨보는 패션 브랜드는 환경 친화적인 패션이나 젠더 유연성처럼 자신이 대변하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브랜드입니다. 2017년 파리 11구에 문 연 비건 vegan 패션 콘셉트 스토어 마니페스트 011 Manifeste 011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은데, 이들은 아방가르드 스타일과 친환경 제품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해 윤리적이면서도 쿨한 패션 브랜드로 빠르게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어요. 점점 의미나 가치를 갈망하는 현대 소비자에게 이처럼 삶의 기준이나 힌트를 줄 수 있는 브랜드가 점점 더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알리스 파이퍼의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B>  '메종 키츠네' 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Ikea

Fabien Haug

Maison Kitsuné
Issue No. 69

Maison Kitsun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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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메종 키츠네는 날 선 취향으로 새로운 뮤지션을 발굴해온 음악 레이블에서 프레피 룩의 감성을 절묘하게 이식한 패션 하우스, 브랜드의 바이브를 담은 카페로 차근차근 브랜드의 레퍼토리를 넓혀왔습니다. 글로벌 팬덤을 거느린 브랜드로 성장한 이후에도 ‘여우’라는 뜻의 브랜드 이름처럼 자유로운 변신을 거듭하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영역을 섭렵하는 도전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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